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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불변과 만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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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현상 논설위원

이현상 논설위원

1946년 3월, 베트남독립동맹(베트민)을 이끌던 호찌민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식민 통치를 회복하려는 프랑스와 잠정 협정을 맺는다. ‘프랑스연합 내 인도차이나 연방의 일원’으로 베트남의 제한된 주권을 인정받는 내용이었다. 식민 수탈의 구원(舊怨)인 프랑스와 굴욕적 협정이라니. 완전 독립을 기대했던 여론은 들끓었다. 반역자(越奸)라는 욕설까지 나왔다. 호찌민은 100년을 지배했던 프랑스보다 1000년을 지배했던 중국을 더 무서워했다. 일본군 무장 해제를 핑계로 하노이에 진주한 중국(국민당)군을 철수시키려면 프랑스의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프랑스는 곧 떠날 수밖에 없으리란 전략적 판단도 작용했다. “평생 중국인의 똥을 먹는 것보다는 프랑스인의 똥 냄새를 잠시 맡는 게 낫지요.” (윌리엄 듀이커 『호찌민 평전』)

이때 호찌민이 내세운 자신의 좌우명이 ‘이불변 응만변’(以不變 應萬變, 베트남어로 ‘지벗비엔 응번비엔’)이다. 불변의 원칙으로 1만 가지 변화에 대응한다는 뜻이다. 민족 독립이라는 가치는 절대 양보하지 않지만, 이를 이루는 방식은 유연해야 한다는 현실주의 철학이다. 한학에 조예가 깊었던 호찌민답게 주역의 핵심 논리인 ‘변’(變)을 빌려 이념이 빠지기 쉬운 경직성을 벗어나려 했다.

이후 프랑스의 약속 위반으로 협정이 깨지자 호찌민은 치열한 전투 끝에 1954년 프랑스를 몰아냄으로써 원칙을 입증했다. ‘이불변 응만변’은 프랑스·미국과의 전쟁에서는 유연한 전략·전술의 지침이 됐고, 통일 후에는 개혁·개방을 이끄는 국가 통치 철학으로 이어졌다. 총부리를 겨눴던 한국과 미국에 대해서는 굳이 과거를 묻지 않는 ‘응만변’의 지혜를 발휘하고, 영토 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에 대해서는 ‘이불변’의 강단을 보인다.

베트남 현대사에 등장했던 이 말이 최근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의 페이스북 새해 다짐으로 소환됐다. 의문의 아랍에미리트(UAE) 방문, 갑작스러운 남북 대화 국면 등 현실 상황과 연관해 해석이 분분하다. ‘이불변’의 원칙을 다짐한 건지, ‘응만변’의 유연함을 강조한 건지도 궁금하다. 북핵, 외교, 적폐청산, 일자리와 경제 등 우리를 둘러싼 문제는 가히 ‘만변’이다. 과연 무엇을 ‘불변’으로 삼아 엉킨 실타래를 풀까. 각자 생각하는 불변의 원칙이 아집이 되지 않으려면 경청과 포용, 토론과 설득이 필요하다. 말만 꺼내면 험구와 비난, 편 가르기와 드잡이만 난무하는 쪼개진 운동장에서 우리 사회의 ‘불변’은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하나.

이현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