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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이상한 신당 게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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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강민석
강민석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강민석 논설위원

강민석 논설위원

대감 죽은 데는 안 가도 대감집 말(馬) 죽은 데는 가는 게 정계 인심이다. 권력이 있을 때는 말 초상에도 간다. 하지만 권력에 내일이 보이지 않으면 인심이 야박해진다.

한때 ‘새정치’ 안철수에게 ‘정치 9단’ 박지원은 상왕(上王)이었고, 스스로 ‘헌정치’임을 인정했던 박지원에게 안철수의 새정치는 보톡스였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에게 권력이면서 보완재였으나 대선 패배 이후 필요 수명이 다했다고 느끼는 것 같다. 그게 지금 국민의당 내전의 본질일 수 있다. 박지원은 안철수-유승민 동맹을 “야합”이라고 비난한다. 하긴 야당(국민의당+바른정당)끼리 합치려 하니 야합(野合)은 야합이다.

박지원은 여기에 ‘보수대야합’이란 프레임까지 씌웠다. 콧대 높은 유승민을 붙잡아야 하는 안철수가 대북정책에 있어 완전히 오른쪽에 있는 바른정당 스탠스를 더 왼쪽으로 바꿔놓기가 어려움을 알고 찌르는 급소 공략이다. “초딩” “밴댕이 속” 같은 인신공격은 보너스다.

안철수도 맷집이 세졌다. 그는 박지원같이 말폭탄은 던지지 않는다. ‘안-유 동맹’에 대한 전 당원 투표를 밀어붙인 것처럼 행동으로 응수한다. 이제 1월 말이나 2월 초께 전당대회를 소집해 아예 통합 논의에 대못을 박아버리려 한다. 말로는 통합 반대파를 “설득하겠다”고 하지만 길 떠나도록 봇짐 내어주면서 앉으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사실상 “나가는 문은 저쪽”이라고 박지원 등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하늘을 나는 기러기떼도 길잡이는 한 마리다. 그런데 두 리더가 서로 정반대로 잡아끄니 올해 여의도에 두 개의 신당이 생기려 한다. 안철수의 ‘통합신당’이 하나, 박지원 등 호남 세력의 ‘개혁신당’이 다른 하나다. 뭐가 통합이고, 뭐가 개혁이라는 건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거의 선거의 법칙이다. 전국 선거가 있는 해에는 정계개편이 일어난다는 것. 당장 국민의당이 2016년 총선, 바른정당이 2017년 대선 정계개편의 산물이다.

잘 걸어가다가도 말(馬)만 보면 타고 가자 한다더니, 지방선거가 있어서인지 멀쩡하던 정당까지 신당 열차에 올라타려 한다. 지각변동이 있으면 굉음이 크다. 그러니 지금의 잡음도 당연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도대체 신당이 나랑 무슨 상관인지 모를 국민에게는 아니다. 2016, 2017년 만든 신당을 허물고 또 만든 당이 신당인지 헌당인지, 추진 세력은 명분과 비전을 제대로 설명해야 한다. 군사를 쓸 줄 아는 장수는 총소리보다 북소리를 먼저 울린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신당 게임에는 총소리만 있다.

강민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