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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선택진료 폐지는 의료체계 도약의 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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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권용진 서울대병원·공공보건의료사업단장

권용진 서울대병원·공공보건의료사업단장

1일부터 서울대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면 더는 선택진료비 즉, 특진비를 내지 않아도 된다. 대부분의 병원이 그럴 것이다. 아직 의료법이 개정되진 않았지만, 선택진료제를 유지하는 병원은 정부의 의료 질 평가 가산금을 받을 수 없어서다. 선택진료제는 1963년 도입돼 55년 만에 폐지 수순을 밟았다.

선택진료제 폐지는 건강보험제도의 우여곡절을 보여준다. 가난했던 나라가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겠다고 ‘저부담-저수가-저급여’ 체계로 건강보험을 시작했고, 여러 가지 성장통을 겪고 있는데 이 중 하나가 특진 폐지다.

선택진료제는 사립대보다 급여가 적은 국립대 의대 교수 수입을 보전하기 위한 방편으로 시작되었다. 2000년 400병상 이상 병원으로 확대한 이후 취지와 문제점이 계속 지적됐다.

가장 큰 문제가 과도한 본인 부담 비급여(비보험) 문제다. 특진 의사를 선택하면 수술비가 400만원 나오면 의료기관에서 최대 200만원까지 선택진료비를 추가로 받을 수 있었다. 적은 돈이 아니다. 중증환자는 경험이 많은 교수에게 특진을 받으면서 많은 돈을 내야 했다. 건강보험이 중증일수록 더 보장해야 하는 데 반대 현상이 발생했다.

또 경증환자는 동네의원에서 진료받아도 되는데, 돈 있는 사람은 대학병원의 유명교수를 찾았다. 가난한 중증환자는 대학병원의 특진비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제 선택진료제는 사문화되었다. 의료기관 손실이 불가피하다. 이를 보전하기 위해 수가 인상과 의료 지원금 신설·확대 등을 추진해왔다. 아무리 정교하게 보전해도 수익이 줄어드는 일부 병원이 있을 것이다. 대학병원 쏠림현상이 심화할 수 있다. 중증이나 경증이나 상관없이 원하면 누구나 유명교수를 찾게 될 것이다. 대학병원 쏠림은 지금도 심각하다. 다만 선택진료제도 폐지가 얼마나 심화시킬지, 이로 인해 의료체계가 얼마나 더 나빠질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분명한 것은 선택진료제 폐지는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이다. 이것만으로 의료체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하나씩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해결되고 그런 변화가 더 큰 변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이해관계자의 합의와 노력이 필요하다.

의료계는 이미 일부 수익이 감소하고 강제적인 질 평가를 받으면서 고통을 분담하고 있다. 환자는 과도한 본인 부담이 사라진 만큼 ‘적정 이용’이라는 책임감을 높여야 한다. 물론 환자들이 적정이용을 할 수 있으려면 의사와 의료기관에 대한 신뢰가 높아져야만 한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연구와 대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선택진료제도의 폐지가 본인 부담 인하를 넘어서 ‘신뢰 중심 의료체계’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정부·의료계·환자 공동의 노력이 필요한 때다.

권용진 서울대병원 공공보건의료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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