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상 잦았던 손광민, 손아섭으로 불리자 진짜 '아섭' 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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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이름] 야구선수 손아섭, 그리고 대한민국 개명지도

‘김지영ㆍ변분돌ㆍ김하녀ㆍ임신ㆍ송아지ㆍ박하늘별님구름햇님보다사랑스런우리ㆍ김태희ㆍ전지현ㆍ도민준…’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만큼 다양한 이름이 있습니다. 이름은 ‘나’입니다. ‘이름을 불러줬을 때 꽃이 됐다’는 김춘수의 시구처럼, ‘춥고 모진 날 사이로 잊혀진 네 이름을 안다’는 아이유의 노랫말처럼,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가리킵니다.

‘올 한해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하게 되는 새해 벽두, 그래서 이름 얘기를 해보려 합니다. 이름에 얽힌 네 편의 이야기를 통해 오늘 우리 사회, 우리의 삶을 들여다보겠습니다. 첫 회는 이름을 바꾸고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 손아섭 선수 이야기입니다. 특별취재팀


지난해 98억원의 계약료로 우리나라 프로야구 사상 세번째로 가장 높은 몸값을 기록한 롯데 자이언츠의 손아섭 선수. 그는 "'손광민'에서 '손아섭'으로 이름을 바꾸고 삶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지난해 98억원의 계약료로 우리나라 프로야구 사상 세번째로 가장 높은 몸값을 기록한 롯데 자이언츠의 손아섭 선수. 그는 "'손광민'에서 '손아섭'으로 이름을 바꾸고 삶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손아섭이 말하는 ‘이름과 나의 삶’

이 남자의 생체시계는 오후 6시 30분에 맞춰져 있다. 프로야구 경기가 시작되는 시각. 온몸의 세포는 한 치 어긋남도 없이 최적의 상태로 깨어난다. 그가 매일 아침 눈 뜨고, 밥 먹고, 근육을 푸는 건 모두 이 시간을 위해서다.

잦은 부상 끝, 마지막이란 생각에 이름을 바꿨다. 이름은 불러줘야 힘이 생긴다. 운좋게도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새 이름을 연호해주는 관중들이 있었다.

잦은 부상 끝, 마지막이란 생각에 이름을 바꿨다. 이름은 불러줘야 힘이 생긴다. 운좋게도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새 이름을 연호해주는 관중들이 있었다.

손아섭(29ㆍ롯데 자이언츠)은 프로야구 선수로 살아온 지난 11년 동안 ‘오후 6시 30분’을 위해 전력 질주했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악바리’라고 불렀다. 싫지 않았다. 사실이니까.

그는 부산에서 태어났다. 경북 청도가 고향인 아버지, 부산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다. 부모님은 한자로 ‘빛 광(光)’에 ‘백성 민(民)’을 이름으로 지어주셨다. 아들이 공부로 이름을 날리길 바라셨지만, 그는 말썽꾸러기였다. 어려서부터 공부보다 장난질로 유명했다.

야구는 부산 양정초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테니스공 놀이’로 시작했다. 3학년 때 야구부에 들어가 ‘진짜 야구’를 배웠다. 하지만 어린 그에게 운동은 너무 힘들었다. 마냥 놀고 싶어 중학생(양정중) 때 야구복을 벗었다. 하지만 3개월을 꼬박 놀고 나니 온몸이 근질거렸다.

그때 이웃 개성중 야구감독이 그를 찾았다. 당시 개성중 야구부는 부산에서 최약체였다. 부원도 11명이 전부였다. 9명이 시합에 나가고 2명이 더그아웃(대기구역)을 지켰다. 한 명이라도 다치면 제대로 경기를 하기 힘들었다. 손아섭은 그래도 전학을 택했다. 다시 야구를 하기 위해. 돌이켜 보면 제일 재미있고 행복한 게 야구였으니까.

개성중에서 신나게 야구를 하고 ‘야구 명문’ 부산고에 진학했을 때, 그는 앞으로 단 하나만 생각하기로 했다. ‘제일 잘하고 좋아하는 것을 하자. 이왕 하는 것 최고가 되자.’

연 이은 부상, 그리고 개명

2007년 부산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했다. ‘유망주’란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승부욕이 타올랐다. 하지만 불운이 찾아왔다. 2008년 7월 사직구장에서 두산과 경기를 할 때였다. 1점을 뒤지고 있는 6회 투아웃. 땅볼을 치고 1루로 달리다 발목을 접질렸는데, 인대가 늘어났다. 전년도(2007년) 손목 수술에 이은 큰 부상. 그는 1군에서 제외됐다.

시즌이 끝나자 어머니 이나금씨가 그를 불렀다. “이름을 아섭(兒葉)으로 바꿔보자”고 하셨다. ‘땅 위에서(葉) 최고인 아이(兒)’란 뜻이란다. 싫었다. 부상 좀 당했다고 이름까지 바꿔야 한단 말인가. 어머니는 지지 않으셨다. “이름을 바꾸면 부상 없이 오랫동안 좋아하는 야구를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설득하셨다. 곰곰 생각해보니 부상이 그에게 골칫거리인 것 맞았다. 마음을 바꿔먹었다. ‘잃을 게 없으니, 무엇이든 해보자’는 심정이었다.

손아섭 선수는 "내가 가장 좋아하고 가장 잘 하는 것. 그것이 야구다. 최고가 되고 싶다"고 했다.

손아섭 선수는 "내가 가장 좋아하고 가장 잘 하는 것. 그것이 야구다. 최고가 되고 싶다"고 했다.

‘아섭’을 불러주는 사람들  

최고가 되고 싶은 마음을 담아 개명을 했지만, 이듬해 성적은 신통찮았다. 하지만 관중들이 다시 그를 일으켜 세웠다.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팬들은 그의 새 이름 ‘아섭’을 연호했다. 이름은 불러줘야 힘이 생긴다고 했던가. 투지가 솟았다. 이후 8년 연속 타율 3할에, 2년 연속 전 경기 출전, 20홈런 20도루 기록을 세웠다. 지난해 말엔 롯데와 98억 원에 재계약도 했다. 국내 프로야구 사상 세 번째로 높은 몸값이다. 그는 이름처럼 진짜 ‘아섭’이 됐다.

아섭이란 이름으로 산 지 10년. 무엇이 달라졌을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선수로서 손광민과 손아섭은 확연히 다릅니다. 광민일 때는 겁이 없고 자신감이 넘쳤죠. 다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멋모르고 야구를 했거든요. 손아섭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요.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이런 생각을 하죠. 약해졌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전 차분해지고 성숙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손아섭으로 기억되고 싶냐구요? ‘누구보다 에너지 넘치고 항상 최선을 다한 선수’ ‘팀이 힘들 때 타석에 서면 뭔가 될 것이라고 기대를 받은 선수’로 팬들 기억 속에 남고 싶어요.”

아섭(兒葉)은 '땅 위에서 최고가 되는 아이'라는 뜻이다.

아섭(兒葉)은 '땅 위에서 최고가 되는 아이'라는 뜻이다.

이름, 힘의 원천

손아섭은 흔히 ‘개명해 성공한 선수’로 불린다. 하지만 그의 얘기는 달랐다. “개명은 계기일 뿐”이라고 했다. 단단한 자기 확신과 노력이 뒷받침돼야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누구에게나 힘든 시간이 오기 마련이잖아요. 개명 전, 어릴 때는 슬럼프가 오면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 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부딪혔어요. 폼을 바꿔보기도 했죠. 그랬더니 오히려 고통의 시간이 길어지더라고요.”

손아섭은 “지금은 고비가 오면 ‘올 것이 왔구나’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어떻게 고비가 없는 삶이 있을 수 있겠어요. 저는 고비를 이기기 위해, 당연히 와야 할 것이 왔다고 생각하고 평소 하던 대로 합니다. 부자에게도, 대단한 선수에게도 고통은 파도처럼 옵니다. 그때 자포자기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유지하려 노력해야 합니다. 타자는 투수랑 싸워야 하는데, 자기 자신과 싸우면 질 수밖에 없잖아요.  

저는 이름 바꾼다고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자기 자신의 노력이 필요해요. 스스로 ‘이름도 바꿨으니 잘 될 것’이라고 믿으며, 열심히 노력하면 좋은 결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 노력도 하지 않으며, 막연히 '잘 되겠지' 생각만 하면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습니다.”

손아섭은 올해 우승을 노리고 있다. “11년간 야구하면서 한국시리즈에 못 가봤어요. 한 번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아봐야죠. 선수들끼리는 ‘우승은 하늘이 정해주는 것’이라고 얘기해요.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겠죠. 그래도 올해 제 꿈은 우승이에요. 제겐 우승이 인생의 성공이에요. 성공을 위해 달려가는 중이고, 앞으로도 달려갈 겁니다.”

 '내 이름'으로 개명한 한국인이 있을까? 몇 명이나 될까? 궁금하시다면 이미지를 클릭하세요. '신기방기 대한민국 개명 검색기'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만약 링크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주소창에 개명검색기 주소(URL)를 복사해 붙여넣으세요. http:www.joongang.co.kr/Digitalspecial/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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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민준과 서연이 됐을까

사람들은 왜 개명을 할까. 남궁 기 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이름은 정체성과 직결된다. 개명을 해서라도 부모가 지은 이름 대신, 자신의 인생관과 이미지에 맞는 이름을 가지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기 많은 민준이와 서연이

대법원 전자가족관계등록시스템에 등록된 85만 2614명의 개명 데이터를 전수 분석해봤다(2012~2017년 10월 말 기준). 대한민국 국민이 가장 많이 바꾼 이름은 민준(남)과 서연(여)이었다. 특히 남자는 전국 어디서든 ‘민준’이라는 이름이 가장 인기가 많았다. 세종시(건우)와 제주특별시(지환)을 빼곤 전 지역에서 민준이 개명 1위를 차지했다.

남자보다 여자가 이름 많이 바꿔

성별 차이는 지역 차이보다 더 도드라졌다. 여자(66.56%)가 남자(33.44%)보다 배 이상 많았다. 성명학자인 김만태 동방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는 그 이유를 사회ㆍ경제적 활동과 연결지어 풀이했다. “남자는 30~40대를 넘기면 자신이 쌓아올린 사회적 지위ㆍ관계를 고려해 쉽게 이름을 바꾸려 들지 않는다. 반면 상대적으로 사회활동 참여가 적었던 여자는 이름을 바꾸는 데 거부감이 덜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민준과 서연 다음으로 한국인이 선호한 새 이름은 남자 ‘현우-지훈’, 여자 ‘지원-수연’ 순이었다.

남궁 교수는 “외국인도 발음하기 쉽고, 영문 표기가 쉬운 이름을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과거 선호 이름과 비교해 뜻보다 발음, 이름에서 연상되는 이미지를 중시하는 경향이 뚜렷하다”는 것이다.

개명 신고 가장 많은 곳 서울 양천구

지난 6년 누적기준으로 개명 신고가 가장 많았던 곳은 서울 양천구(1만3434명)였다. 서울 강남구(1만1841명), 경남 김해시(1만1701명)가 뒤를 이었다. 왜 유독 이들 지역에 개명 신고가 집중됐을까.

양천구청 가족관계등록팀 김혜진 주임은 양천구가 ‘개명 전국 1위’를 차지한 배경을 ‘개명 시장의 발달’로 풀이했다.

이름을 바꾸려면 법원에 개명 신청을 하고, 허가를 받으면 지자체에 신고를 해야 한다. 개명 신청은 관할 지역 법원에 해야하지만, 법원 허가만 받으면 신고는 전국 시ㆍ구청 어디에서든 할 수 있다. 보통 법무사에게 위임하는 경우가 많은데, 한해 평균 13만 명 이상이 개명 신청을 하다보니 전국에서 일감을 받는 법무사들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자연히 이런 '전국구' 법무사들이 몰려 있는 지역에서 개명 신고가 크게 늘고 있고, 그 대표적인 곳이 서울 양천구라는 게 김 주임의 설명이다.

김 주임은 “서울남부지방법원 인근의 법무사 사무실 여러 곳이 건당 10만원에 전국 단위로 개명 신청ㆍ신고 대행을 하고 있다”며 “우리 구청에 개명 신고를 한 사람 중 상당수가 양천구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는 젊은 유동 인구가 많은 게 순위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된다. 기업체가 많아 타 지역보다 직장인들의 신고가 많은 것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김태환 강남구 언론팀장은 “50~60대 어르신들은 호적 이름과 실제 이름이 달라 개명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20~30대는 한글이나 한자이름 대신 ‘다니엘’이나 ‘엘리야’같은 개성있는 이름으로 바꾸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개명 신고 전국 3위에 오른 김해시 민원소통과 관계자는 “경기 악화로 경제적으로 힘들다보니 '개명이라도하면 나아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이름을 바꾼다는 경우가 가장 많다”고 밝혔다.

한편 전국에서 인구대비 개명 신고가 가장 많은 곳은 서울 중구로, 100명 당 1명 꼴로 집계됐다.



특별취재팀=김현예·정선언·정원엽 기자, 사진=김경록·우상조 기자, 데이터 분석=배여운, 영상=조수진, 디자인=김은교·김현서·임해든, 개발=전기환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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