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미술품 경매시장 아시아 덕분에 초호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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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인들이 세계 미술품 구매에 대거뛰어들면서 경매 업체인 소더비의 지난해 실적이 15년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사진은 소더비의 런던 경매장. [중앙포토]

동아시아(한국.중국.일본) 사람들이 국제 미술품 시장에서 '큰손'으로 떠오르고 있다. 덕분에 세계적인 미술품 경매 업체인 소더비와 크리스티가 호황을 누리고 있다.

소더비는 지난해 27억5000만 달러(약 2조7500억원)의 미술품을 경매해 5억1350만 달러(약 51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고 파이낸셜 타임스(FT)가 9일 보도했다.

전 세계 100여 곳의 지점이 있는 소더비의 지난해 실적은 최근 15년간 가장 많았다. 게다가 순이익은 6300만 달러(약 630억원)로 전년도보다 85%나 늘었다. 실적이 공개되자 8일 소더비의 주가는 최근 5년간 최고치인 주당 23달러(약 2만3000원)까지 올랐다.

경매업계에서 소더비의 라이벌인 크리스티도 지난해 미술품 판매액이 30억 달러(약 3조원)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두 업체의 런던 경매장 판매액은 4억5100만 달러(약 4500억원)로 월 최다 판매 기록을 세웠다. FT는 "전 세계 미술품 경매 업계에 15년 만에 대호황이 찾아왔다"며 "이는 경제 성장으로 여유가 생긴 동아시아인들의 구매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소더비의 유럽.아시아 책임자인 로빈 우드헤드는 "지난달 런던 경매장에서 팔린 미술품의 11%는 동아시아인이 사간 것으로 보인다"며 "최근 5년간 10배 이상 성장한 러시아 시장과 더불어 경매 업계의 최대 관심사가 됐다"고 밝혔다.

우드헤드는 "동아시아인의 경매 참여로 경매에 나오는 미술품의 종류도 그만큼 다양해졌다"며 "인상파 화가의 작품이 경매 시장을 주도하던 15년 전과 달리 최근에는 현대적 작품이나 비서구권에서 만들어진 작품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동아시아인 중에서 중국인의 미술품 구매 열풍이 두드러진다. 그 중심에는 중국 인민해방군이 있다. 인민해방군은 과거 서양에 강탈당했던 중국 미술품을 되찾기 위해 지난해부터 전 세계 경매 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현역 장성들이 경영진으로 포진한 무기 수출업체 바오리 그룹은 지난해 전 세계 경매장에서 10억 달러(약 1조원)어치의 미술품을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기를 팔아 번 돈을 잃어버린 미술품을 되찾는 데 대거 투입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중국 미술품의 평균 경매 가격은 10년 전에 비해 다섯 배 이상으로 올랐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2010년 상하이 무역박람회 등 대형 국제행사를 치를 예정인 중국 정부는 2015년까지 전국에 1000개의 미술관을 열 계획이다. 동아시아인이 미술품 경매시장에 대거 '큰손' 노릇을 하자 동아시아 작가의 작품도 덩달아 인기를 모으고 있다. 이달 31일 소더비 뉴욕 경매장에서는 한.중.일 현대 미술품 경매가 열릴 예정이다. 뉴욕 경매장이 한.중.일의 현대 작품만 모아 따로 경매에 부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에서도 팝아트 계열의 20대 신진작가를 포함해 24명이 진출한다. 국내 미술품 경매 업체인 서울 옥션의 구화미 팀장은 "세계 미술품 경매의 중심지인 뉴욕에서도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미술품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지고 있다"며 "예전처럼 고 미술품이 아니라 현대미술 작품이 초대를 받은 것 자체로도 국내 미술계의 위상이 오른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강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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