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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위안부 합의, 그 무게와 결과도 생각해 대응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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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위안부 할머니들을 청와대로 불러 재작년 위안부 합의에 대한 뜻을 묻고 위로한 것은 사리에 맞는 일이다. 지난해 말 발표된 위안부 태스크포스(TF)의 지적대로 2년 전 합의에는 여러 가지 잘못이 서려 있다. 한 맺힌 피해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듣고 이를 합의 내용에 반영하는 게 당연했다. 그래야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보편적 원칙에 맞다.

한·일 관계 투트랙 접근, 비현실적 #대승적 관점에서 신중하게 다뤄야 #아베도 예상 외로 위안부 언급 자제

다만 명심할 점은 초청된 할머니와 위안부 관련 시민단체 외에 다른 피해자들의 생각도 고루 살펴야 한다는 사실이다. 문 대통령이 만난 이들은 대개 위안부 합의 내용에 부정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2년 전 위안부 합의 이행을 위해 설립된 화해치유재단 측에 따르면 당시의 생존 피해자 47명 중 36명이 보상금 성격의 돈을 받았다. 돈을 수령한다는 게 꼭 합의에 찬성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들의 뜻도 다시 물어야 전체 의견을 알 수 있다.

위안부 문제는 한·일 간 핵심 이슈 중 하나임엔 틀림없다. 하지만 미래 지향적 양국 관계 개선도 이 못지않게 중요하다. 정부는 위안부 문제와 다른 현안이 구분돼 다뤄지길 바라지만 이는 우리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위안부 합의 논란으로 감정이 나빠질 대로 나빠진 일본이 다른 사안이라고 협조적으로 나오리라 기대하는 건 무리다.

두 나라 간에는 안보 협력과 경제 교류 등 손을 맞잡아야 할 일이 한둘이 아니다. 특히 북핵 문제 해결에는 일본의 협력이 긴요하다. 평창 겨울올림픽을 앞둔 상황에서 한·일 관계 악화는 바람직하지 않다. 되도록 피해야 한다. 당장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평창에 안 올 조짐이고 일본 관광객도 크게 줄지 모른다.

정부가 위안부 합의를 폐기하거나 재협상에 나서겠다고 하면 한·일 관계는 끝없는 나락에 떨어질 게 뻔하다. 위안부 합의가 비록 법적 구속력을 갖춘 협정이나 조약이 아니라고 해도 두 나라 간 약속임은 틀림없다. 문 대통령도 직접 할머니들에게 “합의가 잘못됐지만 (일본 정부와) 공식적으로 합의한 것도 사실이어서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향후 정부의 대응은 국내 정서에 좌우되기보다 양국 정부 차원에서 맺은 외교협상의 무게도 감안해야 한다.

위안부 문제는 끝까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이해를 구하면서 대승적 차원에서 처리해야 할 사안이다. 일본도 위안부 합의 논란으로 양국 관계가 회복 불능에 빠지는 걸 원하지는 않는 분위기다. 어제 아베 총리의 기자회견에선 예전처럼 “1㎜도 움직이지 않겠다”는 강경 발언이 나올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국의 구체적 조치를 보고 대응하겠다는 신중한 분위기가 읽힌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결과도 충분히 생각하며 결정을 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위안부 문제로 한·일 관계가 회복 불능이 되지 않도록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외교 관계는 망가뜨리긴 쉬워도 복구하긴 어려운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