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판사까지 불법 지적하는 판사 PC 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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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중견 법관이 ‘판사 PC 조사’ 건에 대해 반대 의사를 밝혔다. 법원 ‘추가조사위원회’의 PC 강제 개봉에 공개적으로 이의를 표명했다. 김태규 울산지법 부장판사는 법원 내부망(코트넷)에 “법률 근거도 없이 수뇌부 의중에 따라 위원회가 구성되고 강제 조사가 이뤄진다면 구성원들은 조직을 신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추가조사위가 영장주의라는 형사법의 대원칙에 위배된다는 의심을 야기하며…”라고 비판했다.

이 사건은 지난해 봄에 불거진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에서 시작됐다. 법원행정처가 판사 성향 분류 자료를 만들었다는 주장이 제기된 게 발단이었다. 그 뒤 독립적 기구의 진상조사가 진행됐고 해당 주장의 근거를 확인할 수 없다는 결론이 발표됐다. 하지만 일부 판사가 법원행정처 간부들이 사용한 PC를 직접 확인하게 해 달라고 요구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취임 직후 이를 승인했다.

추가조사위는 지난해 말 사용자들의 동의 없이 PC들을 열었다. 법원 소유의 업무용이긴 하지만 개인 정보도 들어 있는 PC다. 개인 소유물(정보)을 합법적 강제력(압수수색 영장)을 갖추지 않고 뒤진 셈이다. 추가조사위는 ‘영장주의라는 형사법의 대원칙에 위배’라는 김 부장판사의 지적에 이렇다 할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김 대법원장은 이 일로 인해 고발(직권남용 혐의)돼 검찰 조사 대상이 됐다. 전임자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블랙리스트 문제로 고발된 상태라 자칫 전·현직 사법부 수장이 모두 검찰 조사를 받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아무리 의혹 규명이 중요하다고 해도 그 절차와 방법이 합당해야 한다. 김 대법원장은 법원 내부에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검찰이 이에 개입하게 된 상황을 엄중하게 봐야 한다. 훗날 이 사건이 법원이 반성해야 할 ‘과오’ 리스트에 오르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