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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레저] 평창 따돌린 그 곳 휘슬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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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토리노 겨울 올림픽이 막을 내린 지난달 26일.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州)의 휘슬러는 스키 리조트 지역답지 않게 후끈 달아 올랐다. 마을 광장 한쪽에 설치된 대형 화면은 올림픽 폐막식을 생중계하고 있었다. 전체 인구가 9700여 명밖에 안 되는 작은 마을에서 '2010 겨울 올림픽'의 카운트다운을 시작하는 날이었다. 하늘에서 쉼없이 눈이 쏟아졌지만 광장의 열기는 저녁 늦도록 식지 않았다.

<휘슬러(캐나다)> 글·사진=성시윤 기자

2003년 7월을 잊지 못하는 한국인으로서 솔직히 시샘도 났다. 2003년 프라하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두 차례 투표 끝에 강원도 평창이 단 3표 차이로 밴쿠버.휘슬러에 2010 겨울 올림픽 유치를 내주지 않았던가.

이곳 스키 리조트는 휘슬러산(2182m)과 블랙콤산(2284m)이라는 두 봉우리에 걸쳐 자리 잡고 있다. 슬로프 사위로는 사시사철 푸른 북미산 솔송나무가 촘촘히 서서 20~30m에 이르는 키를 자랑한다. 빽빽하게 산록을 뒤덮은 솔송나무 숲 안으로 트레일(숲 사이의 소로)을 닦은 탓에 스키장은 자연미를 유지하고 있다. 스키 리프트는 11월부터 이듬해 4월 말까지 가동되며 빙하 지대인 블랙콤 정상으로 올라가면 여름에도 스키를 탈 수 있다 한다. 리프트가 37개나 되는 데다 스키를 탈 수 있는 트레일이 200개가 넘는다. 정상부터 베이스에 이르는 스키 코스 중 가장 긴 것은 길이가 11㎞에 이른다. '북미 최고의 스키 리조트'라는 정평이 과장이 아님을 알겠다. 가을과 겨울에는 스키를, 봄.여름에는 트레킹과 산악자전거를 즐기려고 매년 2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전 세계에서 몰려온다. 천혜의 자연이 만들어준 스키장이 마냥 부러울 뿐이다.

리프트 37개에 트레일 200개 … 최장 11㎞ 짜리 코스도

휘슬러가 겨울 올림픽을 유치하기까지 수십 년간의 노력이 있었다. 겨울 올림픽이란 게 없었다면 휘슬러는 애당초 이 땅에 태어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휘슬러는 겨울 올림픽을 위해 만들어졌다. 그것은 밴쿠버에 사는 한 기업가의 꿈에서 비롯됐다. 그는 1960년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겨울 올림픽을 보고 브리티시컬럼비아주에서도 올림픽을 유치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가졌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밴쿠버에서 북쪽으로 120㎞ 거리에 있는, 지금의 휘슬러였다. 66년 이곳에 겨울 올림픽을 위한 스키장이 만들어졌고 밴쿠버와 휘슬러 사람들은 줄기차게 올림픽 유치의 꿈을 다졌다. 72, 76, 80, 88년 네 차례의 겨울 올림픽을 향한 도전. 하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마침내 2003년 프라하에서 2010 겨울 올림픽을 따냈다. 40여 년에 걸친 도전의 결과였다. 이제 4년 뒤 이곳 휘슬러에서 활강.바이애슬론.크로스컨트리.노르딕.스키 점프.봅슬레이.스켈레톤 등 겨울 올림픽 실외 경기가 치러진다. 토리노처럼 전 세계의 관심을 얻을 것이다.

'4전5기' 40년 도전 끝에 올림픽 따내

올림픽에는 영웅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 법. 휘슬러에선 '머리 부녀(父女)' 이야기를 적극 홍보하고 있다. 휘슬러 출신의 데이브 머리라는 스키 선수가 있었다. 그는 스키 월드컵 남자 활강에서 금메달을 따며 70년대 스키계를 풍미했다. 82년 은퇴한 뒤에는 고향으로 돌아와 휘슬러에서 후배들을 지도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37세의 젊은 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등졌다. 90년의 일이다. 이후 사람들은 휘슬러 리조트의 상급자 코스 하나에 그의 이름을 헌사했다. 2010년 남자 활강 경기가 열릴 데이브 머리 코스가 바로 그것이다. 데이브 머리가 세상을 떠나기 두 해 전 그의 딸 줄리아가 태어났다. 현재 19세. 역시 스키 선수 출신인 데이브의 아내는 딸에게 스키를 가르쳤다. 줄리아는 두 살 때부터 스키를 타기 시작했고, 현재 캐나다 여자 활강의 유망주로 꼽히고 있다. 휘슬러 사람들은 줄리아가 2010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내 아버지의 명성을 이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휘슬러는 75년 행정구역상 '휴양자치시'(Resort Municipality)로 지정됐다고 한다. 상주 인구 1만 명의 도시에 115개의 호텔(모두 5400실)이 꾸려질 수 있는 것도 관광에 역점을 둔 행정 덕택일 것이다. 캠핑장까지 포함하면 여름에는 하루 2만4000명의 관광객을 소화할 수 있다고 한다. 휘슬러의 마을 광장에서 만난 이곳 주민 제임스 클루티에. 30년 가까이 휘슬러에서 살아왔다는 그는 '평창'이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토리노 올림픽 폐막식을 구경하며 2010 올림픽 카운트다운을 자축하던 주민들은 "2014년 겨울 올림픽은 꼭 평창이 유치하게 될 것"이라는 응원을 빠뜨리지 않았다. 토리노 올림픽이 끝나던 날, 새로운 축제를 준비하는 화합의 정신이 휘슬러에 뜨겁게 흐르고 있었다.

*** 여행정보

휘슬러 스키 리조트의 리프트권은 성인 기준 당일권이 75캐나다달러(1캐나다달러는 900원 정도)다. 오후 1시 이후부터 스키를 타는 오후권은 53캐나다달러다. 리프트권 가격 등은 휘슬러 스키 리조트 홈페이지(whistlerblackcomb.com), 휘슬러 지역의 숙박 등 여행 정보는 휘슬러 관광국 홈페이지(www.tourismwhistler.com)를 참고. 휘슬러는 여름.겨울이 성수기이며, 봄.가을은 상대적으로 한산하다.

지난해 브리티시컬럼비아 관광청 한국사무소(02-777-1977.HelloBC.co.kr)가 문을 열었다. 휘슬러.밴쿠버 등 브리티시컬럼비아 관련 여행 안내 책자를 얻을 수 있다. 요청하면 우편으로도 보내준다. 현지에선 휘슬러 상공회의소(www.whistlerchamber.com)가 운영하는 관광 안내소에서 요긴한 정보를 구할 수 있다. 개별 여행자에게 여행 예산에 알맞은 숙소를 안내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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