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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상기자의도쿄한입에먹기] 눈으로 먹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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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글.사진=유지상 기자

구두약으로 광을 낸 듯한 겉모습과 달리 꼬리를 자른 붉은 속살엔 하얀 기름이 거미줄같이 촘촘히 박혀 있다. 그 살점을 손전등을 켜 들고 꼼꼼하게 살펴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품질이 뛰어난 참치를 고르는 모양이다. 10여 분이 지나자 종소리와 함께 한 마리 한 마리 가격이 매겨진다.

'도쿄의 부엌'이라고 불리는 쓰키지(築地)시장에서 매일 새벽 벌어지는 참치경매장의 모습이다.

경매가 끝난 참치 한 마리의 뒤를 따랐다. 5분 거리에 있는 '나이쇼(內勝)'란 참치 전문 도매상의 커다란 도마 위에 참치가 올랐다. 미리 칼을 준비한 조리사들이 조심스럽게 참치 살을 발라내기 시작한다. 사람 키보다 긴 칼을 쓰기도 하고, 무사의 허리춤에서 나온 듯한 칼을 사용하기도 한다. 30여 분이 지나자 250㎏ 짜리 참치 한 마리가 사각의 마구로(참치) 횟감 몇 덩어리로 나뉘었다. 덩어리마다 손을 대면 톡하고 손이 다시 튕겨 올라올 듯한 탄력감이 느껴진다. "여기서 손질한 마구로 횟감은 도쿄 시내의 최고급 초밥집이나 특급호텔 일식 레스토랑에서 쓰입니다. 가끔 한국의 고급 음식점 주인이 전날 비행기를 타고 와 좋은 것을 골라 가 저녁 손님의 식탁에 올리기도 합니다." 서울의 유명 일식집에서 일했다가 뒤늦게 일본요리 유학길에 나선 늦깎이 유학생 백종성(38)씨의 설명이다.

쓰키지 시장의 공식적인 면적은 23만㎡. 도쿄돔 다섯 개에 해당한다. 그러나 시장 주변에 자생적으로 생긴 소매시장까지 합치면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16만㎡)의 두 배 규모. 청과.야채를 취급하기도 하지만 워낙 미비해 쓰키지 어시장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아침상을 차리는 '도쿄의 부엌'구경은 일단 오전 5시30분에 열리는 참치 경매시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앞서 도착하면 대형 냉장트럭에서 참치를 부리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늦었을 경우엔 참치 경매장에 갈 것 없이 바로 참치 해체작업을 하는 상점을 찾는 게 낫다. 참치 해체도 오전 7시를 전후해 모두 끝나기 때문이다. 좀 더 늦어지면 전기톱으로 하는 냉동 참치 절단작업 구경에 만족해야 한다. 참치를 보고 나선 다른 상점도 두루 둘러볼 것. 어른 손바닥만 한 활전복을 만날 수 있고, 책가방만 한 도미랑 광어가 펄떡펄떡 뛰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새벽 도매시장에선 구경도 못한 특이한 해산물도 많다.

쓰키지 시장의 바깥으로 눈을 돌리면 볼거리에 먹거리도 가득하다. 종잇장처럼 하늘하늘 날리는 가쓰오부시가 돌덩어리처럼 말린 가다랑어를 대패로 갈아서 만든 것을 알게 된다. 이 밖에 건어물.조개.청과.야채 등 식자재는 물론 그릇이나 칼 같은 주방용품 상점도 즐비하다. 새벽 상인을 상대로 영업 중인 음식점도 빠뜨릴 수 없다. 100년 가까이 된 국숫집, 갓 해체한 참치로 만들어내는 초밥집 등 이른 새벽부터 문밖으로 줄을 잇는 맛집도 도처에 널려 있다.

쓰키지 시장에 갈 때는 반드시 달력을 확인할 것. 빨간 날은 모두 휴장이다. 장외시장 몇몇 상점이 문을 열긴 하지만 이곳의 하이라이트인 참치 구경을 못한다. 또 상점에서 파는 해산물도 전날 남은 것이기 때문에 신선도가 떨어진다. 평일이라고 해도 오전 9시가 넘으면 파장 분위기다. 해맞이하는 기분으로 움직여야 알차게 눈으로 맛볼 수 있다. 도에(都營)지하철 오에도(大江戶)선을 타고 쓰키지 시장역에서 내려 A1출구로 나오면 걸어서 3분 거리에 정문이 있다.

*** 주변 볼거리

눈에 쏙 일본 그릇 , 맘이 흐뭇 사케 한 병

먹거리가 풍성한 도쿄에는 먹을 것만 있는 게 아니다. 쓰키지 시장처럼 조금만 발품을 팔면 눈으로 즐길 수 있는 명소도 여러 곳 있다. 그릇과 주방용품 전문시장인 갓파바시 거리 등 대표적인 네 곳을 덧붙여 소개한다.

■ 갓파바시 거리=아사쿠사에서 한 정거장 떨어진 다와라(田原)역에서 시작하는 주방용품 거리. 을지로처럼 직선으로 곧게 뻗은 도로 양편으로 그릇과 주방용품 상점이 즐비하다. 음식 관련 전문가들은 빠뜨리지 않고 구경하는 곳. 점포마다 차이는 있는데 보통 빨간 날은 쉬고, 오전 9시 문을 열어 오후 6시에 닫는다.

■ 고메(米)갤러리=긴자 한복판에 위치. 쌀에 관한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곳이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쌀 요리교실도 무료로 운영하고 있다. 무료로 나눠주는 쌀 요리 카드가 인기. 100여 장이 모두 다른 내용이라 이것만 모아도 요리책 한 권이 만들어진다. 오전 10시~오후 6시에 개장, 월요일과 경축일은 휴무. 입장료 무료. 03-3248-4131.

■ 사케 플라자=일본의 대표적인 전통주인 니혼슈(日本酒)와 쇼추(燒酒)의 정보자료관. 6000여 권의 술 관련 서적을 비롯해 일본 술에 관한 다양한 자료를 갖추고 있다. 일본 각지의 술도 판매하고 있어 시중에서 구하기 어려운 술도 살 수 있다. 신바시역 근처. 토.일요일과 경축일은 쉰다. 개장시간은 오전 10시~오후 6시. 03-5319-2091

■ 맥주기념관=삿포로 맥주 본사 지하 1층에 맥주 공장을 재연한 것처럼 내부를 꾸몄다. 시음 라운지에선 에비스 생맥주를 200엔에 맛볼 수 있다. 맥주 기념관 옆의 에비스 가든 플레이스 타워의 39,40층 식당가에 올라가면 맑은 날 낮엔 후지산을 볼 수 있다. 월요일 휴무. 오전 10시~오후 6시 무료 개장. 03-5423-7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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