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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냄비’ 안전의식으론 제천 참사 또 일어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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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공하성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

공하성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

지난해 12월 21일 충북 제천의 스포츠센터에서 발생한 화재 참사는 최악의 인재(人災)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29명이 숨지고 39명이 다쳤다. 이번 참사는 우리 사회에 많은 교훈을 던졌다. 되짚어 보자. 2010년 부산 우신골든스위트 화재는 건물 외벽이 드라이비트 공법으로 시공돼 화재 발생 30분 만에 불이 38층까지 번졌다. 2015년 의정부 대봉그린아파트 화재는 어떤가. 필로티 구조인 1층 주차장에서 발생한 불이 유리문을 통해 계단으로 유입돼 순식간에 퍼졌다. 소방대가 긴급 출동했으나 불법주차로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

땜질 처방 말고 근본적 대수술 시급 #불법주차 차량 손상 책임 묻지 말고 #1층 출입 방화문 설치 의무화 필요 #건물주 세금 혜택 줘 안전성 높여야

소방시설 작동 불량과 필로티 구조, 드라이비트 공법, 1층 계단 일반문 설치 등 제천 참사 역시 부산·의정부 사고와 판박이다. 지금 상태로라면 언제 어디서 어떤 참사가 발생할지 모른다. 불행한 일을 막으려면 어디서부터 손을 봐야 할까.

첫째, 불법주차로 인한 출동 지연을 해결하자. 미국·영국·캐나다 등 선진국은 불이 나면 불법주차 차량을 부수면서라도 신속하게 출동한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소방기본법 제25조는 ‘소방본부장·소방서장 또는 소방대장은 소방활동을 위해 긴급히 출동할 때 소방차 통행과 소방활동에 방해가 되는 주차 또는 정차된 차량과 물건 등을 제거, 이동시킬 수 있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출동 때 불법주차 차량을 손상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관련 법이 있지만, 민원과 소송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소방청과 지방자치단체가 나서 “차량을 손상하더라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해야 한다. 긴급 출동한 소방관에게는 인센티브를 주고 민원이나 손해배상 문제가 발생하면 시·도지사가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일본은 안전에 있어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않고, 하라는 것은 반드시 하는 국민성’이 있다. 불법주차를 하면 범칙금을 최대 15만원까지 물린다. 우리보다 4배 많다. 우리나라도 범칙금을 인상하고 일본처럼 좁은 도로 통과용 소형 펌프차를 적극 도입할 필요가 있다.

둘째, 모든 층에 화재가 급속도로 확산하는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자. 주차장 확보가 용이한 필로티 구조는 1층에 출입문을 설치하는 데, 바로 계단과 연결된다. 이번 사고에서 드러났듯 출입문을 방화문으로만 설치했어도 유독가스 유입을 막을 수 있었다. 현행법상 1층은 미관과 편의성을 고려해 방화문을 설치하지 않아도 된다. 이런 예외 규정이 피해를 키운 것이다.

시론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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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부산 화재로 드라이비트 공법의 위험성이 지적되자 정부는 30층 이상 건물에 대해서 외벽에 불연재를 사용하도록 건축법을 개정했다. 의정부 화재 때도 드라이비트 공법이 문제가 됐지만, 해당 건물은 10층이었다. 현재는 6층 이상은 외벽에 내화성능 기준을 적용하도록 강화됐다. 문제는 법을 소급 적용할 수 없어 신축 건물만 적용할 뿐 기존 건물은 사각지대라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어떤 법이든 예외 규정이 많다. 반면 일본은 예외 규정을 선호하지 않는다. 안전 관련 법이 만들어지면 누구나 예외 없이 지켜야 한다. 우리도 안전에서는 예외를 두지 말고 강력하게 시행하고, 국민도 반드시 따르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한다.

셋째, 가장 중요한 ‘냄비’ 안전 의식 추방이다. 사고가 날 때마다 안전을 외치지만 금방 사그라진다. 이번에도 정부와 자치단체는 전국 스포츠센터를 모두 점검한다고 떠들썩하게 나설 것이다. 또 그때뿐이 아닐까. 그동안 정부와 자치단체, 소방당국은 보여주기식으로 대충대충 점검하며 부산을 떨었다. 건물주도 법 위반이 아니라면 잠시 경각심을 가졌을 뿐 문제점을 개선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이번 기회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철저하게 점검하고 건물주는 법과 규정에 위반되지 않더라도 권고사항을 능동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자발적으로 소방점검을 받고 건물을 최상의 안전상태로 유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건물주는 경제적인 부담 때문에 이를 꺼릴 수 있다. 미국에서는 건물이 화재로부터 안전하다고 평가를 받으면 보험료를 할인해주는 등 건물주의 적극적인 동참을 유도한다.

우리나라는 화재보험에 대한 인식이 높지 않다. 따라서 안전한 건물에 대해서는 정부와 자치단체가 재산세·양도소득세 등의 각종 세제 혜택을 주고 화재보험도 적극 가입하도록 유도할 것을 제안한다. 당장은 불편하고 거추장스럽겠지만, 작은 불편을 감수해야 지킬 수 있는 게 안전이라는 걸 모든 국민도 공감해야 할 것이다.

공하성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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