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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최종병기 활’은 반도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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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4호 19면

차이나 포커스

일러스트=강일구 ilgook@hanmail.net

일러스트=강일구 ilgook@hanmail.net

중국이 우리에게 ‘마약 같은 매력적인 나라’에서 ‘계륵 같은 나라’로 변했다. 우리 주문자상표부착(OEM) 공장의 노동자로 생각했던 중국이 갑자기 사드 보복을 계기로 한국 제품을 사 주는 큰손으로 인식이 바뀌었다. 그리고 중국이 사드 보복을 시작하면서 정부도 기업도 중국을 상대하기 거북하고 두려운 대상으로 보기 시작했고 중국과의 협상도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다.

중국은 AS 대신 CS만 먹히는 나라 #화장품·음식료 팔아 봐야 힘 못 써 #스마트폰·차 사는 사람 정보 모아 #반도체·빅데이터로 승부 걸어야

우리는 왜 갑자기 중국을 두려워하는가? 한국의 대중국 공포는 한국의 정보 부족, 인재 결핍에서 오는 것이다. 한국은 한·중 수교 이후 25년간 OEM 공장을 지어 떼돈 벌었지만 중국을 잘 모른다. 중국 전문가, 대만이 아닌 중국 본토 전문가를 키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중국 업무를 하는 고위직 중에서 중국에서 학교 나오고 중국 측과 중국어로 자유롭게 소통하고 농담하고 협상할 만한 인재가 얼마나 될까?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초연결과 빅데이터인데 고객 데이터베이스(DB)가 없으면 꽝이다. 최대 무역 상대국인 중국에 대한 고객 DB가 우리에겐 없다. 중국이 무슨 생각하는지 잘 모른 채 우리 생각만 가지고 중국에 덤비기 때문에 판판이 깨지는 것이다. 중국인의 마음을 읽어야 협상에서 이기는데, 외교나 협상에서 기본인 언어가 안 되면 애초부터 승산이 낮다. 지금 중국은 ‘아메리칸 스탠더드(AS)는 의미 없고 차이나 스탠더드(CS)만 먹히는 나라’인데 미국에서 석·박사 한 인재를 중국법인 대표로 보내고 외교하러 보내면 중국과의 협상에서 당할 수 밖에 없다.

중국, 물(水)과 활(矢)을 두려워한다

그간 한반도와 중국의 관계를 보면 한국은 중국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한·중간의 역사를 보면 중국의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 있었다. 첫째 중국은 물(水), 지형에 약했다. 중국은 대륙국가였고 넓은 대륙에 황하와 양자강, 겨우 강 두 개에 목숨 걸고 살았다. 그래서 물에 약했다. 중국은 한반도를 침략했지만 청천강에서 살수대첩에 당했고, 일본의 왜구를 치려고 했지만 바다를 본 적이 없는 북방의 기마민족은 배만 타면 멀미를 해 일본 공략에 성공한 적이 없었다. 중국이 한반도를 침략했을 때도 강화도로 피난 간 왕과 삼별초를 중국은 건드리지 못했다. 임진강과 서해 바다를 건너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다 건너 피난 가면 건드리지 못했지만 남한산성으로 피난 간 왕은 바로 포로가 됐다.

둘째 중국은 활(矢), 한국의 필살기에 약했다. 동이족은 활을 잘 쏘는 민족이었다. 한국의 선조인 고조선·고구려·발해는 중국을 두려워한 것이 아니라 중국이 두려워한 나라들이었다. 시진핑 주석이 롤 모델로 삼는다는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千古一帝) 황제 중의 하나가 당 태종이라고 한다. 천하의 당 태종이 후대 황제들에게 내린 계훈이 정관정요인데 거기에 어떤 경우에도 고구려를 먼저 침략하지 말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유는 고구려를 침략했던 당 태종이 양만춘 장군이 쏜 화살에 눈을 맞아 결국 그 후유증으로 사망에 이르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중국, 고구려의 활을 두려워했다.

한국의 대중국 협상력은 4차 산업혁명에서 기회를 찾아야 한다. 중국은 지금 1·2·3차 산업혁명에서 뒤져 낙후된 나라로 전락했었지만 지난 40년 간의 경제발전으로 주요 2개국(G2)으로 올라섰고 이젠 초(超)연결과 초(超)지능의 4차 산업혁명에서 미국을 추월하는 선두주자로 부상을 노리고 있다. 4차 혁명시대에 빅데이터는 물·전기와 같은 기초자원이다. 데이터의 양이 인공지능(AI)의 지능지수를 결정한다. 4차 산업혁명은 누가 더 많은 빅데이터를 확보하고 거기서 마치 비트코인 추출하듯이 유용한 지적자산(IP)을 더 많이 추출하느냐의 경쟁이다.

신기술의 역사를 보면 시발점과 종착역이 같았던 적이 없었다. 증기기관은 영국에서 만들어졌지만 고속도로가 가장 긴 미국에서 자동차로 꽃피었다. 기술은 시장을 못 이긴다. 4차 산업혁명은 실리콘밸리에서 시작됐지만 미국과 유럽 인구보다 더 많은 13억6000만 명의 모바일 가입자가 있는 중국 빅데이터의 바다에서 피어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이 4차 산업혁명에서 선두에 설 가능성이 있는 이유는 빅데이터에 있다. 미국은 얻을 수 없는 13억6000만 대의 스마트폰에서 나오는 거대한 빅데이터가 실시간으로 클라우드에 집적되고 알리바바·탄센트 같은 인터넷 기업들이 이것을 이용해 콘텐트를 만들어 금융·사물인터넷(IoT)·인공지능·로봇에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4차 산업혁명서 한국과 협력 필수

한국은 4차 혁명에서 중국의 빅데이터를 확보하고 공유하는 전략이 중요하다. 방법은 연간 3억5000만 대의 스마트폰을 파는 삼성이 3억5000만 명의 스마트폰 소비자에게 단말기 가격을 할인해 주는 대신 이들을 삼성의 스마트폰 앱의 가입자로 확보하는 것이다. 4년이면 중국 인구와 같은 14억 명의 거대한 빅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 이 빅데이터를 중국과 협력의 카드로 사용하는 것이 스마트폰 생산 강국 한국이 쓸 수 있는 한 방법이다.

IoT·빅데이터·인공지능 등 4차 혁명에서 중국이 잘 나가면 잘나갈수록 더 절박한 것이 있다. 중국은 반도체를 제대로 못 만든다. 한국이 정말 결정적인 순간에 진짜 독하게 마음먹고 중국의 노트북·휴대전화·서버·클라우드에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반도체 공급을 중단하면 중국의 4차 혁명은 성공 못한다. 중국은 4차 산업혁명에서 한국과 반도체에서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국은 대중국 관계에서 화장품·음식료·오락프로그램으로 덤비면 당한다. 중국이 절절히 원하지만 갖지 못한 것을 들고 흔들어야지 중국에도 차고 넘치는 것을 들고가 왜 안 사주느냐고 얘기해 봤자 들은 척도 안 한다. 반도체를 두고 한국 경제의 착시니, 저주니 하는 것은 잘못이다. 중국을 견제할 유일한 한국의 필살기가 반도체다. 단군 이래 어떤 품목에서 한국이 세계 시장의 70%를 장악한 적이 있었나? 전쟁이든 경제든 외교든 간에 필살기가 있어야 된다. 최종병기 활이 당나라를 떨게 한 고구려의 필살기였다면 지금은 반도체다. 한국, 스마트폰과 자동차가 아니라 스마트폰과 자동차를 사 간 사람의 빅데이터를 확보하고 반도체 기술로 승부를 걸어야 승산이 있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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