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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일만 기름유출 "죽음의 바다"...넋잃은 어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피해보상은 어찌 된다캄니까. 질질 끌다간 황금어장이 폐허가 되고 마는데 돈이 있어야 어장복구를 할게아닙니껴.」
지난달 24일 경북영일 앞바다 침몰 유조선 경신호에서 유출된 벙커C유로 연안어장을 망친 영일군 청하면·흥해읍·동해면일대 2천여가구 어민들은 어장복구와 피해보상이 언제 어떻게 이뤄질지 몰라 잠을 설치고있다.
어장을 망친 기름이 한시바삐 걷혀야 미역 한줄이라도 더 건질 수가 있으나 피해보상은 고사하고 어장복구방안도 소식이 없어 어민들은 아픈 가슴만 치고있다.
특히 기름오염은 계속 번져가고 있는데다 선체인양작업도 늦어져 오염피해가 늘어날 것이 불가피해짐에 따라 연안어족이 서식처를 잃는 등 연안해양생태계가 바뀔 우려마저 안고있어 걱정이 겹치고 있다.

<보상문제>
경신호는 안국화재에 선체보험6억원, 고려화재에 화물보험 2억8천만원, 영국P&I사에 3백50만달러(26억6천만원)의 오염피해보험이 들어있다.
이중 오염피해보험은 지난달 10일로 계약기간이 끝났으나 조회결과 『계약만료 1개월간은 계약이 유효하다』는 국제관례에 따라 가까스로 보험금을 타게됐다.
그러나 이 보험금으로 피해를 보상하기에는 액수가 너무 적다. 화물보험으로는 그런대로 피해보상을 할 수 있지만 문제는 어민피해보상.
선주인 부산 경신해운의 백무호사장(45)이 가진 재산이라고는 사고유조선1척이 전부. 따라서 피해보상능력은 영국P&I사에서 받을 오염피해보험료 26억6천만원과 선체보험료 6억원을 합쳐 32억6천만원 뿐이다.
1종공동어장과 양식장 1천9백49ha의 바다목장이 죽음의 검은 바다로 변한 피해만도 1백50억원(어민주장)이 넘는데다 3백24척의 유자망등 어선 1천여척이 10여일 째 출어를 못하고 하루벌이 해녀들의 잠질도 중단되는 간접피해까지 더하면 피해액은 눈덩이처럼 눌어난다.
게다가 칠포리해수욕장 3km의 백사장이 기름펄로 변해 올여름 개장여부가 의문이며 기름오염이 확산된 영일·울진·영덕관내 5백여개 연안횟집들도 장사를 망칠 것이 뻔한가하면 2천50백60t의 기름이 실린 침몰 유조선이 수압에 못 견뎌 터지기라도 할 경우 피해액은 지금보다 수십 수백배까지 늘어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는 실정.

<어민주장>
피해 어민들은 정부가 개입해 피해보상을 해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것도 생계와 관련, 「당장」을 호소한다.
그러나 내무부·수산청·경북도관계관으로 구성된 경신호침몰 오염피해 실무대책반은 보상협의를 오는 4월말로 잡고있어 어민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어민 김복근씨(60·흥해읍칠포리)는 『당국이 보상협의를 오는 4월말에 한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흥분했다.
3ha우렁쉥이 양식장을 망쳐 5천6백여만원의 피해를 보았다는 김무백씨(31·칠포리)는 『4월말 어민측과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부산 수대부설 해양과학연구소에 피해조사를 의뢰, 그 결과에 따라 피해액을 결정토록 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밝히고 『그러면 그동안 어민들은 어떻게 살란 말이냐』고 반문했다.
칠포리앞바다에 15방의 1종공동어장과 20h의 양식장을 일궈 연간 5억원의 소득을 올려오다 날벼락을 맞은 강여준씨(62) 는 『당장 복구를 하지 않을 경우 어장을 송두리째 망칠 지경인데 4월말까지 피해보상을 늦추는 것은 어민목줄을 끊는 처사』라고 한숨지었다.
또 영일군청하면청진동 권복태씨(44)는 『연간 7천만원의 소득을 올리는 마을1종 공동어장 21ha가 벙커C유로 망해 살길이 막연하다』며 발을 굴렀다.
이에 따라 피해가 가장 많은 청하·흥해·동해면 일대 2천여가구 어민들은 『정부가 우선 어장을 살릴 수 있도록 긴급복구를 해주지 않으면 4월 황금어로기까지 놓쳐 동해중부 연안어장은 버리고 만다』고 대책을 호소하고 있다.

<피해감소노력>
침몰유조선의 기름유출이 유조탱크의 공기통을 통해 계속 유출, 조류를 타고 북상하며 연안을 덮치자 아직 피해를 보지 않은 영덕·울진연안 어민들도 초비상 상태.
울진군기성면구산리 어민들의 경우 3일부터 인부 2백여명을 동원, 수면과 나란히 설치된 양식시설을 4∼10m 바다 아래로 끌어내리는 작업에 밤을 새우고있다.
언제 덮칠지 모르는 벙커C유에 대비, 양식시설을 수심 깊은 곳으로 끌어내려 기름덩이가 덮쳤을 경우에 피해를 줄여보겠다는 몸부림이다.
영덕군영덕읍창포동 최상출씨(48)는 『지난달 24일 경신호가 침몰, 벙커C유가 유출됐다는 소식을 듣고 우렁쉥이 양식장 2ha를 수심10m아래로 내려놓았으나 마음이 놓이지 않아 잠을 제대로 못잔다』고 했다.
이같은 양식강의 바다 밑 대피소동으로 울진을 비롯, 월성·영덕은 물론 인근 강원도삼척연안까지 연일 어민들이 장사진을 이룬다.
어민뿐만 아니다. 여름한철경기로 한해생계를 걸다시피 하는 흥해읍 칠포해수욕장 주변주민들도 해수욕장을 살러보겠다며 검은 반죽이 된 모래사장에 장화를 신고 호박덩이만한 기름덩이를 뜯어내는 등 안쓰럽기 그지없는 모습들이다.
경북도와 관내 9개수협측은 오염우려가 큰 월성·영덕군내 어촌계장들을 벙커C유 오염순시 감시원으로 긴급 위촉, 아침부터 해질 때까지 연안을 순찰토록 하고있다.

<해양생태계전망>
선체인양을 외국기술진에 용역을 준다해도 응급처리 등에 따른 사전준비 기간이 최소한 3주이상 걸려 오염피해는 늘어날 수밖에 없고 이에 따라 청정해역인 동해바다의 생태계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 걱정.
부산수산대 박청길교수(48·해양환경공학)는 『기름의 과다유출이나 기름제거를 위해 유화제를 과다살포할 경우 고기먹이인 플랑크톤이 죽어 이를 먹고사는 고기성장에 지장을 주는데다 어족이 기름냄새에 쫓겨 먼바다로 회유로를 바꿔 어군이 서식처를 옮기는 등 연안생태계의 변화가 우려된다』고 했다.
박교수는 또 유화제를 많이 뿌리면 양식장의 종패·포장 등 각종 종묘성장이 2∼3년간 지장을 받아 어획감수를 부르게된다』고 우려했다.
국내 바다오염사고는 82∼86년사이만도 1천19건이 발생했으나 피해보상이 이뤄진 것은 30여건. 이같은 잦은 해양오염사고는 해양생태계 변화를 불러 연안어장고갈의 주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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