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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간 한 자리서 피켓 든 마을활동가 정달성씨 마지막 시위

중앙일보

입력

마을운동가 정달성씨가 28일 오전 출근시간대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동 광주북부경찰서 앞 사거리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1423일째 시위다. 김호 기자

마을운동가 정달성씨가 28일 오전 출근시간대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동 광주북부경찰서 앞 사거리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1423일째 시위다. 김호 기자

28일 오전 7시30분쯤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동 광주북부경찰서 앞 사거리. 패딩 점퍼와 목도리ㆍ장갑 등으로 무장을 한 남성이 피켓을 들고 환하게 웃었다. 피켓에는 ‘세월호 진실규명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아침 최저기온은 영하 4.4도. 체감온도가 영하 10도 가까이 떨어진 강추위 속에서 1인 시위를 한 주인공은 정달성(38)씨다.

2013년 1월 시작해 일수로 1423일째 광주 용봉동 사거리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부터 세월호 진실 규명 등 요구 #오는 30일 마지막 시위에는 뜻 함께 하는 지인과 이웃 동참

출근길 시민들에게 정씨는 익숙한 존재다. 그가 같은 장소에서 5년 가까이 피켓을 들어서다. 사정으로 1인 시위를 못한 날을 뺀 실제 일수로는 1423일째다. 주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1인 시위를 했다. 주변 마을 노인들은 ‘피켓 청년’, 아이들은 ‘세월호 아저씨’라고 정씨를 부른다. 정씨는 “처음에는 이상한 눈빛으로 보는 주민도 있었지만 점점 편한 이웃으로 생각해준 것 같다”고 말했다.

마을운동가 정달성씨가 28일 오전 출근시간대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동 광주북부경찰서 앞 사거리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1423일째 시위다. 김호 기자

마을운동가 정달성씨가 28일 오전 출근시간대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동 광주북부경찰서 앞 사거리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1423일째 시위다. 김호 기자

정씨가 처음 피켓을 들고 사거리로 나온 것은 2013년 1월 15일이다. 2012년 12월 19일 제18대 대선에서 박근혜 당시 후보가 당선됐지만, 국정원의 대선 개입 등 부정 선거 의혹이 제기됐던 시기다. 그에 대해 잘 모르는 이웃들은 2014년 4월 16일 일어난 세월호 참사가 1인 시위 계기라고 생각하지만, 1년여 전부터 전혀 다른 이유로 피켓을 들었다는 얘기다.

마을의 문제를 주민 스스로 해결하려는 목적으로 꾸려진 비영리민간단체인 생활정치발전소 소장을 맡고 있기도 한 정씨는 원래 6개월 안팎의 기간만 1인 시위를 계획했다. 그러나 피켓을 들기 시작한 이후 끊임없이 터지는 대형 이슈에 해를 넘길 때까지 1인 시위를 이어갔다. 정씨는 “매일 출근시간대 거리로 나오느라 5살, 3살인 두 아이를 제대로 돌봐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며 처가의 지원이 컸다”고 말했다.

마을운동가 정달성씨가 28일 오전 출근시간대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동 광주북부경찰서 앞 사거리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1423일째 시위다. 김호 기자

마을운동가 정달성씨가 28일 오전 출근시간대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동 광주북부경찰서 앞 사거리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1423일째 시위다. 김호 기자

정씨의 피켓 속 이슈들은 대부분 실제로 문제점이 속속 드러나거나 해결되고 있다. 유죄 판결이 난 국정원의 대선 개입, 정부의 무책임한 대응이 밝혀진 세월호 참사, 역사교과서 국정화 정책 폐지, 한ㆍ일 위안부 합의 때 있었던 비공개 사항 등이다. 이 가운데 세월호 참사는 여전히 진실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더욱 큰 노력이 필요하다는 게 정씨의 목소리다.

정씨의 1인 시위를 낯설게 바라보던 시민들은 응원자가 됐다. 정씨는 “1인 시위 중 다가와 ‘박근혜 대통령한테 그러지 말라’ ‘괜한 짓 좀 하지 말고 들어가라’ 등 말씀을 하셨던 어르신들도 요즘에는 ‘자네가 엄청 고생하네’ ‘자네 말이 맞았네’ 등 격려를 해주신다”며 “원래 1000일 무렵에는 정말 중단하려고 했던 1인 시위를 계속 이어갈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고 했다.

마을운동가 정달성씨가 28일 오전 출근시간대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동 광주북부경찰서 앞 사거리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1423일째 시위다. 김호 기자

마을운동가 정달성씨가 28일 오전 출근시간대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동 광주북부경찰서 앞 사거리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1423일째 시위다. 김호 기자

정씨는 오는 30일 마지막 시위에 나서기로 했다. 세월호 진실 규명이 완전히 이뤄진 것은 아니지만, 토대가 마련됐다는 판단에서다. 세월호 진상 조사를 위한 2기 특별조사위원회 구성 등의 내용을 담은 사회적 참사 특별법 국회 통과 등이다. 정씨는 여러 이슈가 담긴 피켓을 거쳐 요즘 다시 세월호 진실 규명 피켓을 들고 있다.

마지막 시위에는 뜻을 함께하는 지인들과 이웃들이 함께 할 예정이다. ‘돈과 이윤보다 생명과 안전’이라는 문구가 적힌 조끼를 입고 있던 정씨는 충북 제천에서 일어난 스포츠센터 화재사고를 언급하며 “주민들이 내가 사는 마을을 더욱 안전하고 행복한 공간으로 바꿔나갈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는 데 보탬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광주광역시=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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