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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익 위해 안 된다더니 … 정부, 2년 만에 스스로 공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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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강경화 외교부 장관(왼쪽)과 오태규 위안부 합의 검토 TF 위원장이 27일 서울 도렴동 외교부에서 보고서를 발표하기 위해 브리핑실로 향하고 있다. [박종근 기자]

강경화 외교부 장관(왼쪽)과 오태규 위안부 합의 검토 TF 위원장이 27일 서울 도렴동 외교부에서 보고서를 발표하기 위해 브리핑실로 향하고 있다. [박종근 기자]

위안부 합의 태스크포스(TF)가 27일 공개한 보고서엔 ‘비공개’로 분류되는 내용이 상당 부분 포함됐다. 일본 측의 요구뿐 아니라 한국 측의 수용·거부와 같은 협상 내용들이다. 오태규 TF 위원장은 “TF에선 (주제별로) 어떤 부분은 외교적 부분이 약간 손상돼도 알려 줘야 한다고 판단했다”며 “자료 열람을 할 때마다 비밀 보안 서약을 쓰고 규정에 따라 열람했다”고 말했다.

정보공개 요구 소송 때 입장 뒤집어 #3년 전 아베 정부 고노담화 검증 땐 #한국 “양국 협의 일방적 공개” 비판 #전문가 “외교 운신의 폭 제한될 것” #한국당 “문재인 정권의 이중잣대” #임종석 UAE 내용 비공개 빗대 비판

‘공공기관의 정보 공개에 관한 법률’과 이에 근거한 ‘외교문서 공개에 관한 규칙’에는 외교문서를 30년간 비공개로 하고, 이후 외교문서 공개심의회의 심사를 거쳐 일반에 공개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현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 외교부를 상대로 낸 ‘위안부 합의 협상문서 비공개 처분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정부가 문서 비공개의 근거로 내세우는 것도 이 법 조항이다. 정부는 일관되게 “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고 말해 왔다. 이번 공개로 정부 스스로 법원에서의 주장을 뒤집은 셈이 됐다.

앞서 정부는 2014년 6월 20일 일본 정부가 1993년 위안부 강제동원 사실을 인정한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관방장관의 담화에 대한 검증 결과를 공개했을 때 당시 외교부 대변인 명의로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 정부는 “아베 정부가 한·일 외교 당국 간 협의 내용을 자의적으로 취사선택, 재구성해 일방적으로 공개했다”며 “(검증이) 외교관례와 예양에 어긋날 뿐 아니라 양국 간 신뢰를 훼손하고 국제사회 행동규범을 일탈한 몰상식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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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만에 한·일 간 공수가 바뀌게 된 셈이다. 당시 미국 연방 하원의원 18명이 일본 정부의 고노담화 검증을 두고 “발표 시점이나 내용 면에서 유감스럽고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동일한 잣대를 적용할 경우 우리가 더 수세에 몰릴 가능성이 있다. 일본의 보고서는 “고노담화 발표 직전 일본 측이 ‘양국 정부가 문안을 조정했다는 것을 언론에 일절 밝히지 말 것’을 제안했고, 한국도 이를 받아들이며 ‘발표 직전 팩스로 발표문을 받은 것처럼 하겠다’고 답했다”고 적시해 논란을 일으켰다. 위안부 합의 TF는 양국의 논의 내용을 더 광범위하게 공개했다. 게다가 일본은 20년 만에 들여다본 것인 데 비해 우리는 불과 2년 만이다. 신각수 전 주일 대사는 “비공개하기로 한 내용을 공개하고, 전체적으로 문제가 있는 합의라고 정리했으니 일본으로서는 한국 정부가 기존 합의를 이행할 생각이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더 커질 것”이라며 “정부의 대일 정책에도 운신의 폭이 상당히 제약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선 청와대가 자세한 내용을 공개하고 있지 않은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의 아랍에미리트(UAE)행에 빗대 “자신들이 밝히면 투명한 진실 규명이고 남이 밝히라고 하면 국익을 해친다고 발뺌하는 문재인 정권의 후안무치한 이중 잣대”(장제원 자유한국당 수석대변인)라는 비판이 나왔다.

위안부 합의 TF의 판단

● 일본의 책임 통감 → 일본이 법적 책임을 사실상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으나 명시적 규정 못해. 피해자 방문 등 조치 일본에 요구했으나 합의에 포함 못해
● 일본의 사죄 표명 → 종래보다 나아진 것이지만 한국이 요구했던 ‘내각 결정’을 통한 사죄에는 이르지 못해
● 일본의 금전적 조치 → 일본 정부 예산만을 재원으로 한 건 처음이지만 피해자들이 돈을 받았다고 해서 위안부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된 것은 아님
● ‘불가역적 해결’ 표현 → 한국은 ‘사죄의 불가역성’ 확보를 위해 제안했지만 합의에는 ‘해결의 불가역성’ 의미하는 것으로 맥락 바뀌어
● 소녀상 문제 → 한국이 합의 내용에 소녀상을 포함시켜, 이전 약속을 하지 않은 의미가 퇴색
● 국제사회에서의 상호 비판 자제 → 청와대는 합의 이후 외교부에 국제무대에서 위안부 발언 말라고 지시. 하지만 이는 유엔 등에서 인권 문제로 다루는 것 제약하지 않아
● 비공개 부분 → 정대협 설득, 해외 기림비, 성노예 표현 등 관련 비공개 내용 밝히지 않아. 피해자 중심 아닌 정부 중심 합의

도쿄=서승욱 특파원, 박유미 기자 yumi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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