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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광주 나눔의집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합의는 무효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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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주 나눔의집에서 생활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등이 한일 위안부 합의 검토 TF 보고결과를 TV로 시청하고 있다. 사진왼쪽부터 김정숙 사무국장, 이옥선(91) 할머니, 박옥선(94) 할머니, 원종선 간호사. 김민욱 기자

경기도 광주 나눔의집에서 생활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등이 한일 위안부 합의 검토 TF 보고결과를 TV로 시청하고 있다. 사진왼쪽부터 김정숙 사무국장, 이옥선(91) 할머니, 박옥선(94) 할머니, 원종선 간호사. 김민욱 기자

“우린 (일본 정부로부터) 사죄를 받아야 한다. (2015년 12·28 한·일 위안부 합의) 1년이 됐던, 2년이 됐던 뭐가 중요하냐. 무효지 무효야. (재합의를) 하려면 제대로 해라.”

"우린 사죄받아야 한다. 합의는 무효다" #외교부 위안부TF 발표에 실망감 #"돈 받고 우리 팔아" 지난 정부 합의 비판 #강 장관 후보시절 "진정성 조처 최선" 약속 #피해 할머니 평균연령 90세 넘어 시간 없어

경기도 광주 ‘나눔의집’에서 생활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91) 할머니는 27일 발표된 외교부 장관 직속인 한·일 위안부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위안부 TF) 보고서 결과를 듣고 이같이 소감을 밝혔다. ‘피해자 중심적 접근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 등의 TF 결과가 나오자 한시름 놓은 모습이지만, 실망감이 역력했다. 현재 합의를 어떻게 하겠다는 내용이 빠져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91) 할머니가 한일 위안부 합의 검토 TF 보고를 들은 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민욱 기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91) 할머니가 한일 위안부 합의 검토 TF 보고를 들은 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민욱 기자

이 할머니는 지난 정부의 합의 과정에 분노감을 드러냈다. 그는 “그때(한·일 합의과정서) 정부에서 돈을 받고 일본사람을 (본국으로) 보냈다”고 운을 뗀 뒤 “우리가 생각할 때. 어, ‘정부에서 위안부 할머니를 돈을 받고 도로 팔아먹었구나!’ 이렇게 분석할 수밖에 없다”고 힘줘 말했다.

이어 “당연히 합의는 잘못된 합의다. (앞으로 재합의를 하려면) 제대로 하라는 거다. 이번처럼 하지 말고. 하려면  제대로 하라는 거다”고 덧붙였다. ‘제대로 하라’를 수차 강조했다. 또 “무효”라고도 누차 밝혔다.

나눔의집에서 외교부 직속 한일 위안부 합의 검토 TF 발표결과를 시청하고 있는 할머니들 모습. 김민욱 기자

나눔의집에서 외교부 직속 한일 위안부 합의 검토 TF 발표결과를 시청하고 있는 할머니들 모습. 김민욱 기자

TF는 이날 오후 3시부터 그동안의 회의 결과를 20분간 설명했다. TF는 지난 정부의 합의를 피해자가 아닌 정부 입장을 위주로 매듭지었다고 평가했다. 특히 전쟁상황 속 여성 인권에 관해 국제사회의 규범으로 자리 잡은 피해자 중심적 접근이 위안부 협상 과정에서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일반적인 외교 현안처럼 주고받기 협상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오태규 TF 위원장은 “한국 정부는 피해자들이 한 명이라도 더 살아 있는 동안 문제를 풀어야 한다면서 협의에 임했다”면서 “하지만 피해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은 채, 정부 입장을 위주로 매듭지었다”고 지적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박옥선 할머니와 원종선 간호사가 손을 꼭 잡고 있다. 김민욱 기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박옥선 할머니와 원종선 간호사가 손을 꼭 잡고 있다. 김민욱 기자

나눔의집에서 생활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9명 중 이옥선·박옥선(94) 할머니만 TV를 뚫어지게 시청했다. 이옥선 할머니는 귀가 어두워 나눔의집 김정숙 사무국장이 발표 내용을 전달해줬다. 박옥선 할머니는 나눔의집 원종선 간호사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하점연(96) 할머니는 거실을 왔다 갔다 했지만, TV를 시청하지 않았다. “그냥 보기 싫다”고 했다.

현재 국내에 생존해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32명 중 최고령인 정복수(101) 할머니가 누워 있다. 김민욱 기자

현재 국내에 생존해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32명 중 최고령인 정복수(101) 할머니가 누워 있다. 김민욱 기자

현재 국내에 생존한 위안부 피해자 32명 중 최고령은 1916년생인 정복수 할머니로 101세다. 정 할머니는 나눔의집에 머물고 있다. 할머니는 간단한 의사소통만 가능할 정도로 심신이 많이 쇠약한 상태다. 워낙 고령인 탓에 이날 낙상 방지용 난간이 양쪽에 달린 요양용 침대에 가만히 누워만 있었다. 침대 앞에 TV가 있었지만 시청하지 않고 돌아누운 채였다.

나눔의집 측은 이번 TF 결과 보고에 대해 실망스럽다는 입장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후보자 시절 인사청문회를 닷새 앞둔 지난 6월 2일 나눔의집을 갑자기 방문했다. 당시 강경화 장관은 할머니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인권 문제의 기본은 피해자가 중심이 돼야 한다는 것”이라며 “장관이 되면 지혜를 모아 진정성 있는 조처를 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TF 보고서 역시 이미 시민사회단체에서 문제를 제기한 부분을 확인하는 수준이라고 실망감을 드러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공동 생활지원시설인 경기도 광주 나눔의집. 김민욱 기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공동 생활지원시설인 경기도 광주 나눔의집. 김민욱 기자

김정숙 나눔의집 사무국장은 “솔직히 말씀드리면 실망을 금하지 못하겠다”며 “피해자가 중심이 된 합의가 아니라는 것을 보고서로 발표한 것은 좋지만, (합의를 폐기할 것인지 등)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또다시 흐지부지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지난 16일 위안부 피해자 중 유일한 해외 생존자였던 송신도(95·일본 도쿄도 거주) 할머니가 노환으로 별세했다. 올해만 8명의 할머니가 자신을 짓밟은 일본 정부의 사죄를 끝내 받지 못한 채 떠났다. 현재 생존한 이옥선·박옥선 등 32명 피해 할머니들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생존자들의 평균 연령은 90.7세다. 85~89세가 16명, 90~95세가 14명, 96세 이상이 3명이다.

나눔의집 측은 위안부TF가 공식적인 협상 이외에 청와대가 개입한 ‘이면합의’가 있었다고 발표한 것에 대해 박근혜 전 대통령을 고소할 방침이다. 다만 우선 어떤 혐의를 적용해야 하는지, 전직 대통령에 대한 고소가 가능한 지 등부터 우선적으로 법리검토를 진행하기로 했다.

경기도 광주=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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