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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중2가 법정서 “어머니, 사랑합니다” 10번 외친 이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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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사랑합니다.” “아들아 사랑한다.”

사춘기 접어든 중2 A군, 엄마 재혼으로 새아빠 생기자 갈등 겪다 가출 #A군의 범죄 계획 알게 된 엄마, 소년보호재판 통고제 신청으로 한 법정 서 #천종호 판사 “서로의 감정 표현하면 갈등 풀려”…‘사랑해’ 외치게 해

지난 22일 부산가정법원 소년재판정에서 중학생 A군(14)과 엄마 B씨(34)가 울면서 서로 10번씩 외친 말이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B씨의 3살짜리 딸이 엄마의 눈물을 닦아주며 “엄마 울지마”라고 위로하자 재판장은 숙연해졌다. 판사의 허가로 일가족 3명이 얼싸안고 울자 재판장에 있던 국선보조인, 재판 실무자, 법원 경위 등도 모두 눈시울을 붉혔다.

감동적인 광경은 천종호 부장판사의 평소 소신이 빛을 발하면서 연출됐다. 8년간 소년재판을 맡아오고 있는 천 판사는 지난 2013년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라는 책을 통해 아이들을 범죄자로 보지 말고 그렇게 만든 어른들이 먼저 반성해야 한다는 소신을 밝힌 바 있다. 천 판사는 평소 다른 재판에서도 아이와 부모가 서로의 감정을 표현하도록 해 갈등을 풀어낸 경험을 갖고 있다.

이날 재판에서 천 판사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3살짜리 이부(異父)동생이었다. 한 달 전에 A군이 가출해 한동안 보지 못했던 오빠를 법정에서 만나자 동생이 쪼르르 달려가 오빠에게 안겼던 것. 엄숙한 법정에서 천진난만한 아이의 행동을 본 천 판사는 일가족이 평범한 가정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갈등을 풀어줘야겠다는 생각에 서로의 감정을 표현하도록 주문했다.

천종호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 송봉근 기자

천종호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 송봉근 기자

결과는 놀라웠다. A군은 차가운 법정 바닥에 꿇어앉아 속죄의 눈물을 흘리며 진심을 담아 “어머니 사랑합니다”를 10번 외쳤다. 이를 본 B씨는“A야 사랑한다”를 10번 되뇌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모자의 거짓 없는 진실한 눈물은 천 판사의 마음마저 울컥하게 만들었다.

A군의 일탈은 중학교 2학년에 접어들면서 시작됐다. 10년 전 이혼 한 B씨가 3년 전 재혼하면서 A군에게 새아빠가 생겼다. 그리고 이부동생도 곧 태어났다고 한다. 사춘기에 접어든 A군은 자신의 사랑을 이부동생이 독차지하는 것 같아 소외감을 느끼기 시작했고, 새아빠와 갈등을 겪기 시작했다. B씨가 중재에 나섰지만 A군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지난 10월 처음으로 가출한 A군은 돈이 떨어지자 인터넷 물품 사기를 계획했다. A군은 피해자들이 입금한 돈을 인출하기 위해 B씨 명의로 계좌를 만들었고, 이 사실을 안 은행이 B씨에게 알리면서 A군의 범행은 덜미를 잡혔다.

B씨는 삐뚤어진 A군을 보며 가슴 아파하다 학교장의 추천으로 소년보호재판 통고제를 신청했다. 소년보호재판 통고제는 비행 학생을 경찰이나 검찰 조사 없이 곧바로 법원에 알려 재판을 받도록 하는 제도로 전과자라는 낙인을 방지할 수 있다. 경찰이나 검찰의 수사를 받지 않고 바로 법원이 개입하기 때문에 신속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전문가의 상담을 곧바로 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 제도는 1963년 도입됐지만 잘 활용되지 않다가 2010년 학교폭력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하면서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미정 부산가정법원 공보판사는 “소년범이 법원에 출석해 재판을 받게 되면 자신의 어리석은 행동으로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체감해 비행소년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며 “가정법원에서 재판을 받았다는 기록은 남지만, 수사기록이나 전과자 낙인이 남지 않아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이날 천 판사는 A군에게 6개월간 보호관찰 처분을 내렸다. 가족과 함께 집으로 돌아간 A군은 6개월간 법원의 소년위탁 보호 위원과 수시로 연락하며 상담을 받게 된다.

부산=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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