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사설

대형 참사 막자는 소방 안전에 ‘셀프 점검’이라니 …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29명의 사망자를 낸 제천 복합상가 화재의 문제점이 밝혀질수록 이렇게까지 많은 인명피해가 날 사고였나 하는 아쉬움이 짙어진다. 제 기능을 못한 비상구, 불법주차로 막힌 소방도로, 스프링클러나 경고 벨 미작동 등 대형 화재 참사 때마다 지적돼 온 문제들이 고스란히 반복됐다.

문제는 대형 참사를 미연에 방지하는 소방점검이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사고 건물에 대한 소방점검은 참사 전 불과 3주일 전에 이뤄졌다. 민간점검업체는 경보와 피난, 소화 등 5개 부문 30개 항목 67곳을 수리 대상으로 판정했다. 하지만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2층 여자 사우나는 점검에서 쏙 빠져 버렸다. 남자 점검 요원들이 여자 사우나라는 이유로 그냥 넘어간 것이다. 이 때문에 목욕용품 수납장 같은 불법 적치물 때문에 비상구 위치가 안 보이고, 탈출로 폭이 좁아진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다.

부실 안전점검은 소방시설관리법의 허점에 기인한다. 현행 소방안전 점검은 건물주가 민간 전문 점검업체에 맡기거나, 자격증을 가진 직원을 통해 직접 하면 된다. 사실상 ‘셀프 점검’이다. 이런 점검 구조에서는 민간업체나 직원은 건물주의 눈치를 보면서 적당히 넘어가기 일쑤다.

문제 발견에서 시정까지의 과정도 더디다. 점검 결과가 소방서에 전달되고, 소방서가 현장 확인에 나서기까지 최소 한 달은 걸린다고 한다. 이번에도 3주 전 점검에서 1층 스프링클러와 경보 벨, 화재감지기 등의 불량이 지적됐지만, 시정을 기다리는 사이 참사가 벌어졌다. 부족한 소방인력 탓만 할 게 아니라 시급한 문제점은 최대한 빨리 확인과 시정에 나서는 등 보완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안전은 단순히 의식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다. 약간의 불편, 몇 푼의 돈을 아끼려다 결국 엄청난 대가를 치른 사례를 우리는 너무 많이 봐 왔다. 비용 문제에 안전이 휘둘리게 하는 제도적 허점은 시급히 바로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