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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민족주의가 중국의 불평등 해결할 수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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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수교 25년 이래 최근처럼 우리에 대한 중국의 입김이 커진 적이 없다. 경제는 물론 외교·안보적으로도 중국의 일거수일투족이 우리 운명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양국관계 긴밀화의 결과다. 우리로선 세밀한 중국 연구가 필요하다. 중국이 무엇을 생각하고 어디로 가려는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이와 관련, 두 가지 키워드를 제시했다. 중국이 ‘신시대’에 진입했으며 신시대를 헤쳐 나가기 위해선 ‘시진핑 사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무슨 뜻인가.

빈곤의 사회주의 구하기 위해 #덩샤오핑이 도입한 시장경제 #자본주의보다 더한 양극화 초래 #신시대 사상이 불균등 해소할까

왜 신시대인가?

중국 공산당에 ‘시대(時代)’ 구분은 이론 문제인 동시에 정치 문제다. 단순한 연대 구분을 넘어 정치 노선의 구별과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시대’는 특정 시기 지도자의 정치 노선이 그 구체적 세계관과 구성 체계에서 이전 지도자와 다른 모습을 보일 때 붙여진다.

마오쩌둥(毛澤東)이 순수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 천착해 중국 부활의 기초를 다지는 한 시대를 열었다면 덩샤오핑(鄧小平)은 사회주의와 시장경제의 병존이 가능하다는 ‘사회주의 초급단계론’에 입각해 마오 시대와는 확연히 다른 개혁·개방의 시대를 중국에 안겼다.

반면 장쩌민(江澤民)과 후진타오(胡錦濤) 집권기는 ‘시기(時期)’에 그친다. 덩샤오핑 이론을 집행한 시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한데 이번 19차 당 대회에서 시진핑이 ‘신시대’ 진입을 선언했다. 그렇다면 덩샤오핑 시대와는 어떻게 다르다는 것인가.

[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시진핑은 덩의 ‘중국 특색’을 계승하면서도 덩샤오핑 이론을 극복하기 위해 그동안 중국이 부심했던 농업·공업·과학기술·국방 등의 4개 현대화를 넘어 국가통치체계와 국가통치능력 현대화를 역설하는 ‘제5의 현대화’를 제시했다.

덩샤오핑 이론은 중국을 장기 빈곤에서 벗어나게 하는 ‘기적’을 이뤘다. 그러나 기적은 계속 일어날 수 없다. 이 방식으론 더 이상 ‘지속 가능한 발전’과 ‘중국몽(中國夢)’ 실현이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시진핑은 아울러 과거 지도자들과는 달리 강군몽(强軍夢)을 강조하며 명실상부한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천명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위대한 미국 재건(Make America Great Again)’의 중국적 표현과 다름없다.

21세기 중엽에 경제적 강국은 물론 군사적 강국까지 달성하겠다는 시진핑의 야심은 중국 특색 발전 모델과 민족주의가 결합한 새로운 이데올로기 제시로 나타나고 있다. 현대화된 사회주의 강국 건설을 강조하는 시진핑 사상의 제기는 바로 시진핑 신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것이다.

시진핑 사상의 핵심은?

우선, 당 중심 정치의 강조다. 시진핑은 기회 있을 때마다 중국에서 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났는지를 잊지 말자는 초심(初心)을 강조한다. 공산당이 수렁에 빠진 중국 백성을 구한 사회주의 정당임을 잊어선 안 된다는 이야기다.

덩샤오핑은 “우경화도 경계해야 하지만 중요한 것은 좌경화 방지(中國要警惕右 但主要是防止左)”라고 말했다. 이게 시진핑 시대엔 “좌의 관건은 과도하지 않으면 된다(左的關鍵是不能過)”는 말로 대체됐다.

둘째, 마르크스주의 변증법이 사회 발전의 동력으로 강조하는 모순론이 수정됐다. 마오쩌둥은 중국 사회의 주요 모순이 계급 모순이라고 말했다. 덩샤오핑은 이를 생산력 모순으로 바꿨다. 인민의 물질적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낙후된 생산력이 문제란 것이다.

그러나 이제 시진핑 시대의 모순이 달라졌다. 현재 중국의 주요 모순은 생산력 모순이 해결된 가운데 심화되는 분배의 불평등 문제다. 즉 신시대의 주요 모순은 다름 아닌 분배의 불균형, 그리고 이로 인한 사회 불평등이라는 것이다.

셋째는 민족주의 강조다. 마오쩌둥이 ‘사회주의 신인(社會主義新鮮人)’의 정신으로 사회주의 건설에 매진할 것을 강조한 것처럼 시진핑은 민족주의를 강조하면서 국가에 대한 충성을 현대화의 동력으로 삼고자 한다.

시진핑의 중국몽은 바로 이러한 논리 구조로 탄생한 것이다. 중국몽 달성에는 정치 안정과 경제 번영이 필수적이며 이는 공산당의 지도하에서만 가능하다고 말한다. 중국이 독자적 발전 모델로 성장한 이면엔 공산당의 일원 통치가 있었기 때문이며, 미래 중국의 국력 회복 역시 공산당이 통치하는 중화인민공화국에 달렸다는 뜻이다.

시진핑 사상의 극복 과제들

시진핑 사상이 지도 이념으로 공산당 당장(黨章)에 삽입됐지만 극복해야 할 난제가 적지 않다. 먼저 당장 삽입의 정당성을 받쳐 줄 성과가 필요하다. 마오쩌둥은 창당 멤버로 28년의 지하투쟁을 거쳐 중국을 건국했고 덩샤오핑은 개혁·개방으로 경제 발전의 길을 열었다.

그러나 시진핑은 구체적이고도 뚜렷한 성과를 거두기 전에 단지 청사진만을 갖고 자신의 이름이 명기된 지도 이념을 당장에 넣었다. 앞으로 확실한 성과로 당장 삽입의 정당성을 뒷받침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된 것이다.

둘째는 ‘빈곤의 사회주의’를 구하기 위해 도입한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가 극복의 대상인 자본주의 체제보다 더 심각한 빈부 격차와 양극화를 초래하는 중국식 사회주의 철학의 빈곤 문제를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다.

자본주의 경제의 전유물인 분배의 불균등과 빈부 격차는 사회주의 혁명 추진의 최대 동인이었다. 한데 중국식 사회주의 체제에서 심화되는 경제적 불평등이 과연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것으로 해소될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셋째, 시진핑 사상은 당의 지도 이념이 됐지만 시진핑은 개인적으로 조정자라기보다는 설계자인 동시에 집행자로서 개혁 정국을 이끌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이 모든 역할 수행이 가능할지 의문인 것이다.

결국 시진핑 사상이 추구하는 건 레닌주의적 성향을 지닌 강력한 공산당 리더십 구축,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위대한 중국, 강력한 중국, 중화의 부흥’을 내용으로 하는 ‘사회주의 강국’ 중국의 건설이다.

시진핑식 통치 스타일에 대해 서방에선 장기 집권 획책이란 비판이 나온다. 시진핑은 ‘시진핑식 강권 정치’ 수립에 골몰하는 독재자가 될 수도 있고, 진정한 중국 발전을 위한 집행자가 될 수도 있다.

‘시진핑 사상’이 중국 발전을 위한 수단으로 기능한다면 명실상부한 ‘시진핑식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가 탄생할 수 있지만, 이들이 또 다른 강권 정치의 도구가 된다면 중국은 예기치 못한 소용돌이에 빠질 수도 있다. 양날의 칼인 셈이다.

◆강준영

대만 국립정치대 동아연구소에서 중국 정치경제학을 전공했다. 외교부 정책자문위원으로 중국의 현대화 전략 및 정치·경제 개혁에 관심이 많다. 20여 권의 저서와 역서, 10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중국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