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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올림픽 D-45] 강릉에 울려퍼질 아리랑, 아이스댄스 대표 민유라-겜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2월 3일 열린 피겨 스케이팅 회장배 랭킹전 및 평창올림픽 2차선발전 아이스댄싱 프리댄스 연기를 펼치고 있는 민유라-알렉산더 겜린. [사진 대한빙상경기연맹]

12월 3일 열린 피겨 스케이팅 회장배 랭킹전 및 평창올림픽 2차선발전 아이스댄싱 프리댄스 연기를 펼치고 있는 민유라-알렉산더 겜린. [사진 대한빙상경기연맹]

내년 2월 2018 평창 겨울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경기에선 한국적인 '4분 드라마'가 펼쳐진다. 한복을 입고, 아리랑에 맞춰 연기하는 민유라(22)-알렉산더 겜린(24) 아이스댄스 조가 주인공이다.

민유라와 겜린 조는 지난 9월 독일에서 열린 네벨혼 트로피에서 4위에 올랐다. 쇼트 댄스에선 55.94점을 받아 7위에 머물렀지만 프리 댄스에서 87.86점을 받아 18팀 중 4위로 뛰어올랐다. 경기 뒤 점수를 확인한 둘은 부둥켜 안고 기뻐했다. 민유라는 감격의 눈물까지 터트렸다. 이 대회 상위 5팀에게 주어지는 평창 올림픽 티켓을 따냈기 때문이다. 한국이 올림픽 아이스댄스에 출전하는 건 2002년 미국 솔트레이크 올림픽(이천군-양태화 조) 이후 16년 만이다. 둘 덕분에 한국은 단체전에도 나설 수 있게 됐다. 남·녀 싱글까지 세 종목 출전권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덩달아 단체전에 나설 페어 팀도 올림픽 무대를 밟게 됐다.

쌍둥이 여동생이자 파트너였던 대니얼과 함께 미국 여권을 든 알렉산더 겜린. [겜린 SNS]

쌍둥이 여동생이자 파트너였던 대니얼과 함께 미국 여권을 든 알렉산더 겜린. [겜린 SNS]

민유라는 미국에서 태어난 재미동포다. 싱글로 활동하던 그는 2011년부터 아이스댄스로 전향했다. 평창에서 열리는 올림픽 무대를 밟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국내엔 남자 선수가 많지 않은 데다 아이스댄스를 하려는 선수도 거의 없다. 고심 끝에 민유라는 외국인선수로 눈을 돌려 이고르 오게이, 티모시 콜레토와 조을 이뤘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그 때 만난 게 겜린이었다. 2005년부터 쌍둥이 여동생 대니얼과 선수로 활동했던 겜린도 대니얼이 은퇴하면서 새 파트너가 필요했다. 이고르 시필반트 코치의 지도를 받아 서로를 잘 알고 있던 두 사람은 의기투합해 평창 올림픽에 도전하기로 했다.

민유라와 함께 한국 여권을 든 알렉산더 겜린. [겜린 SNS]

민유라와 함께 한국 여권을 든 알렉산더 겜린. [겜린 SNS]

문제는 국적이었다. 국제빙상경기연맹이 주관하는 그랑프리, 세계선수권 등의 국제대회는 국적이 달라도 출전 가능하다. 하지만 올림픽은 국적이 같아야만 출전할 수 있다. 미국과 한국 국적을 갖고 있던 민유라는 간단했다. 미국 국적을 포기했다. 하지만 겜린은 한국 국적을 얻어야만 했다. 다행히 법무부는 특별귀화를 받아들여 지난 7월 겜린은 마침내 한국인이 됐다. 겜린은 "한 번은 공항 직원이 나를 외국인 대기선으로 안내해 '나는 한국인'이라고 말한 적도 있다"는 해프닝도 소개했다. 아직 한국말은 익숙하지 않아 기자 회견 때는 한국어와 영어를 모두 할 줄 아는 민유라가 통역 역할까지 맡는다. 그래도 틈틈이 한글 공부를 하고 있어 개인 SNS에 한글로 자주 메시지를 남긴다.

민유라-겜린 조는 지난 시즌 쇼트 댄스 배경 음악으로 K팝을 사용했다. 빅뱅의 '뱅뱅뱅'과 투애니원의 '내가 제일 잘 나가'를 섞은 음악이었다. 평소 K팝을 즐겨듣던 겜린이 '우리는 한국 팀이니 한국 곡을 써보자'고 제안했다. 둘은 올림픽 무대에선 더 한국적인 곡에 맞춰 연기한다. 가수 소향이 부른 '홀로 아리랑'이다. 김연아가 2011년 아리랑을 재해석한 '오마주 투 코리아'를 사용한 적이 있지만 한국에서 태어나지 않은 둘이 아리랑을 사용한 것은 다소 의외였다.

12월 3일 열린 피겨 스케이팅 회장배 랭킹전 및 평창올림픽 2차선발전 아이스댄싱 프리댄스 연기를 펼치고 있는 민유라-알렉산더 겜린. [사진 대한빙상경기연맹]

12월 3일 열린 피겨 스케이팅 회장배 랭킹전 및 평창올림픽 2차선발전 아이스댄싱 프리댄스 연기를 펼치고 있는 민유라-알렉산더 겜린. [사진 대한빙상경기연맹]

심지어 의상도 개량한복이다. 코치는 외국인이 많은 심판에게 어필하기 어렵다며 말렸지만 둘의 뜻은 확고했다. 민유라는 "곡을 고르기 위해 처음 들었을 때 맘에 들었다. 운명인 것 같았다"고 했다. 이어 "우리는 한국 대표이기 때문이다. 의상도 스케이팅에 맞게 만들었기 때문에 불편하지 않다"고 했다. 겜린은 "매일 훈련하면서 음악을 듣지만 감성적이다. 처음엔 아리랑에 관한 이야기를 몰랐는데 알고 나니 더 감동적이었다"고 했다.

올림픽에서 아리랑을 듣기 위해선 전제조건이 있다. 쇼트댄스에서 24개 팀 중 20위 안에 들어야 한다. 가능성은 충분하다. 보통 아이스댄스 조가 국제대회에서 성적을 거두려면 5년 정도 걸리지만 민유라-겜린 조의 성장속도가 빠르기 때문이다. 지난 2월 올림픽 테스트이벤트로 강릉 아이스 아레나에서 열린 4대륙 선수권에서도 8위에 올랐다. 민유라는 "'대한민국의'라는 소개 멘트만 들어도 감동적이었다. 올림픽이 열릴 곳에서 좋은 경기를 해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둘은 훈련 외 시간에도 많은 대화를 나눈다. 둘 사이 호흡을 위해서다. 자연스럽게 '둘 사이 연애 감정은 없는지'가 궁금해졌다. 대답은 언제나 같았다. "우린 베스트 프렌드에요."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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