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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비상구 안에서 열 수 있었는데 목욕 바구니에 막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불이 난 충북 제천시 복합상가 건물 주위를 22일 경찰이 통제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불이 난 충북 제천시 복합상가 건물 주위를 22일 경찰이 통제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충북 제천시 복합상가 건물 2층에서 숨진 20명은 비상구를 찾지 못하고 숨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 비상구는 3주 전쯤부터 바깥에서는 잠겨 있었지만, 안에서는 열 수 있는 상태였다는 증언이 나왔다.

여자목욕탕에서 세신사로 일하다 화재 초기에 1층과 2층 사이 계단에서 창문을 깨고 뛰어내린 A씨는 “최근에 건물 주인이 비상구를 잠가 놓아 밖에선 열 수 없었다”고 24일 말했다. 이어 “하지만 안에서는 열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비상구 문은 안쪽에서 잠긴 상태여서 손잡이 중앙에 달려 있는 돌출 부위를 90도 돌리면 잠금 장치가 해제되도록 돼 있었다는 것이다. A씨는 지난 10월 이 건물이 리모델링을 끝내고 다시 문을 열면서부터 세신사로 일했다.

수납장으로 상당 부분 막혀 있는 2층 여자 목욕탕의 비상구 근처 구조.

수납장으로 상당 부분 막혀 있는 2층 여자 목욕탕의 비상구 근처 구조.

A씨는 화재 당시 희생자들이 비상구만 찾았으면 탈출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하지만 숨진 이들은 목욕용품으로 거의 가려져 있는 비상구의 위치를 몰랐던 것으로 추정된다. 희생자들이 비상구 쪽으로 갔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비상구로 가는 길은 목욕 바구니들로 꽉 찬 선반들이 상당 부분 막고 있었다. 사람 하나가 간신히 빠져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은데, 화재 이후 찍은 사진의 목욕 바구니들은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희생자들은 대부분 중앙출입구 근처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화재가 난 후 2층 비상구를 밖에서 연 모습. 통로가 선반으로 상당 부분 막혀 있다. [사진 소방방재신문 ]

화재가 난 후 2층 비상구를 밖에서 연 모습. 통로가 선반으로 상당 부분 막혀 있다. [사진 소방방재신문 ]

3년 넘게 이 목욕탕에 다녔다는 김모(48)씨는 “연 회원권으로 매일 목욕하러 오는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항상 그곳에 목욕 바구니를 놓고 다녔다. 그 문이 창고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이 여자 목욕탕에서 수년째 매점을 운영하다 지난 1일 그만둔 B씨는 “수년 동안 그 비상구는 잠금장치가 망가져 잠기지 않았다. 내가 그 비상구로 출퇴근을 자주 했으므로 확실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화재 이후 사진을 보니 문손잡이의 색깔이 달라졌다. 최근 3주 이내에 건물주가 새 잠금장치로 바꾼 것으로 짐작된다”고 말했다. 21일 화재 당시 현장에 출동한 소방관들은 화재를 진압한 뒤 해당 비상구를 열고 들어갔다.

하지만 지난달 30일 이뤄진 이 건물에 대한 소방 점검에서 2층 여자목욕탕은 아예 빠져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소방청 관계자는 “당시 소방 점검표에 2층 비상구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고 말했다. 당시 소방 점검을 한 J사 관계자는 “여자 목욕탕에 있던 사람들이 나가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나왔다. 목욕탕을 점검하다 아주머니들에게 쫓겨나는 건 흔히 있는 일이다”고 주장했다.

송우영·박진호 기자 song.woo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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