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층 사우나, 꽉 막힌 비상구가 탈출 막았다…비상등은 꺼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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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제천 화재 참사 희생자 29명 중 20명이 숨진 2층 여성 사우나에서 탈출을 막은 것은 꽉 막힌 ‘비상구’였다.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2층 여성 사우나의 창고로 불법 전용돼 막혀버린 비상구 입구. 총 29명의 사망자 중 20명의 사망자가 이곳에서 발생했다. [연합뉴스]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2층 여성 사우나의 창고로 불법 전용돼 막혀버린 비상구 입구. 총 29명의 사망자 중 20명의 사망자가 이곳에서 발생했다. [연합뉴스]

2층에서 비상구를 통해 1층으로 탈출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단 8초. 화재 당시 비상구만 정확히 찾았다면 대부분 살았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20명의 생명줄이 달렸던 2층 비상구는 꽉 막혀 있었다.

충북 제천 화재로 인한 희생자 29명 중 20명이 숨진 2층 여성 사우나에서 22일 국과수와 소방청, 가스공사 등 합동감식반이 화재현장을 감식하고 있다. 김성태 기자

충북 제천 화재로 인한 희생자 29명 중 20명이 숨진 2층 여성 사우나에서 22일 국과수와 소방청, 가스공사 등 합동감식반이 화재현장을 감식하고 있다. 김성태 기자

2층 여성 사우나로 통하는 비상구 문을 열어보니 안쪽 공간은 목욕 바구니 등을 보관하는 창고였다. 통로 양쪽에 2m 높이의 선반이 있어 한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정도로 좁은 공간만이 있었다.

문 주변에는 흰 손바닥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소방대원들이 비상구를 통해 2층 사우나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남긴 흔적으로 추정된다.

화재 당시 비상구로 통하는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다. 건물주 이모 씨(53)는 22일 “손님들이 목욕용품을 도난당할 수 있다고 민원을 제기해 비상구 문을 잠그고 철제 수납장을 놓았다”고 말했다.

3층 남성 사우나에서는 비상구를 통해 계단을 내려와 대부분 탈출했지만, 2층에 있던 여성들은 이 비상구를 찾지 못해 대부분 사우나 정문으로 탈출하려다 변을 당했다. 사망자 20명 중 시신 11구가 정문 앞에서 발견됐다.

이 정문조차도 작은 버튼을 정확히 눌러야 열린다. 긴박한 상황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해당 건물의 한 근무자는 “정문은 손톱만 한 크기의 빨간 스티커를 정확하게 누르지 않으면 문이 열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추인영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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