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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가난·이별·죽음 … 피하고만 싶었던 우리의 민낯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 것도 없겠지만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 것도 없겠지만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박준 지음
난다

[에세이] 박준 시인은 1983년생이다. 2008년 ‘실천문학’으로 데뷔하여 2012년 겨울에 첫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를 펴냈다. 그리고 5년째이던 올여름에 시인은 첫 산문집인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을 선보였다. 머잖아 등단 10년 차가 되는 이 젊은 시인의 저작 두 권은 얼마 전 나란히 10만 부를 기록하기도 하였는데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읽어줄까, 실은 이 두 권을 만든 사람으로서의 나도 그 이유를 잘 모르겠기만 하다. 다만 좋아서 좋아하는가 보다, 그런 얼버무림으로 시인의 책을 한 번 더 보기나 한다. 본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은 시와 산문 사이에 놓여 있다. 표지에 산문이라 명기는 하였지만 편집은 시의 호흡을 따라 그리한 바 크다. 애초에 무조건적인 분량 채우기에 연연하지 않을 거라는 시인의 집필 의도도 있었지만 왠지 이 책은 군데군데 여백이 크게 자리해야 읽는 호흡에 무리가 가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시집을 만들 때처럼 제목을 읽고 뜸을 들여 본문을 읽어가며 목차를 잡아나갔다. 책을 읽다 말고 먼 산 한 번 바라다보기를, 책을 읽다 말고 옛 옷가지들을 꺼내 다시 개켜보기를, 책을 읽다 말고 잊고 살던 누군가에게 불현듯 전화 걸어보기를, 책을 읽다 말고 물컵에 소주를 따라 마시다가 그대로 잠들어보기를…. 어떤 낭만이 내 온몸을 따뜻하게 덥혔을 때 세상 속으로 내 온몸을 밀어 그 낭만을 퍼뜨리게 하는 아름다운 번짐. 이는 필시 책의 순기능에 대한 또 하나의 비유이리라.

이 책 속에서 내가 발견한 힌트는 바로 이 문장에 있었다. 그러니까 “기억에 오래 남는 평범한 어른들의 이야기”라는 구절에서 나는 ‘기억’과 ‘오래’와 ‘평범’과 ‘어른’과 ‘이야기’에 일단 방점을 탕탕 찍고 본론을 시작했던 거다. 그리하여 이 단어들의 거름망을 무사 통과한 가난이라는 생활, 이별이라는 정황, 죽음이라는 허망을 이 산문집의 주된 정서로 깔았다. 가능하면 피하고만 싶었던 우리들의 민낯, 그 생살을 껴입게 한 것이다.

독자들이 사인을 부탁하자 박준 시인은 이리 적었다. ‘우리 울어요.’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으니 울음 뚝, 이라고 말하는 나와는 아주 딴판인 자다. 이를테면 ‘소용’이라는 ‘무용’을 아주 값어치 있게 여길 줄 아는 사람이랄까. 그렇다고 신파조로 사람의 물기를 쪽 뽑아먹는 책은 아니니 미리부터 우울을 경계하지는 마시길. 서른다섯 재기 어린 청년의 유머도 군데군데 건빵 속 별사탕처럼 섞여 있으니, 달콤하게 반짝이기도 하니.

같이 울면 덜 창피하고 조금 힘도 되고 그러겠습니다, 라는 시인의 당부에서 나는 ‘같이’를 갖는다. 혼자 하는 독서였는데 함께하는 독서로 이렇듯 충만해지는 기분, 박준은 이렇게 다녀가셨다.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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