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한 현지화 … LG 가전 전품목 1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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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가 인도 진출 10년만에 2위 업체로 자리잡은 것은 현지화 경영에 성공한 결과다. 임흥수 인도 법인장은 "직원의 다수가 힌두교도인 점을 감안해 직원들의 심리적 안정과 작업 효율을 높이기 위해 힌두교의 상징물을 조립 라인 옆에 배치했다"고 설명했다. 첸나이=장세정 기자

서울 강남의 숙명여중에 다니는 김영은(15)양은 다음달 인도 첸나이의 국제학교로 유학을 떠날 예정이다. 의사가 꿈인 김양은 "생명공학(BT)과 정보기술(IT)이 우수한 인도에서 3년간 공부한 뒤 현지 대학에 진학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언론매체를 통해 인도의 높은 학구열과, 현지에서 활약하는 한국 기업들 소식을 접하면서 인도 유학을 결심했다"고 덧붙였다.

첸나이 시내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사바리시(17). 인도공과대학(IIT)의 첸나이 분교 캠퍼스에서 만난 그는 "대학을 졸업한 뒤 한국 기업에 취직하고 싶다"고 말했다. 매일같이 TV를 통해 한국 기업의 광고를 보고, 한국 업체가 만든 가전제품을 사용하다 보니 한국에 호감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LG전자 인도공장에 취업한 뒤 한국을 여행하는 게 꿈"이라고 했다.

인도 정부가 대외개방에 나섰던 1991년부터 갖은 어려움 속에서도 한국 기업들이 인도 시장을 뚫고 들어가 좋은 이미지를 심은 결과다.

◆ 약진하는 코리아 브랜드=인도 3위 국영은행인 카나라은행의 첸나이 지점에 근무하는 산딥 님제(26)는 최근 경영학석사(MBA)과정에 등록했다. 대학 전공이 기계공학이었던 그는 "앞으로 경영학을 공부해 현대자동차로 옮기고 싶다"고 말했다.

뉴델리에서 만난 중앙정부 공무원 A는 "LG전자의 에어컨을 사는 게 올해의 희망"이라고 말했다. 이미 LG 컬러TV와 냉장고를 사용하고 있다는 그는 LG의 최신형 에어컨이 꼭 필요한 물건이기도 하지만 중산층의 자부심을 충족시키기에 안성맞춤이라고 했다.

여러 도시를 돌며 만난 현지 시민과 기업인.관료들은 한결같이 한국 기업과 제품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 찬사는 시장 점유율에서 확인된다. LG전자는 세탁기.에어컨.냉장고.컬러TV 등 거의 모든 가전제품에서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LG는 97년 3000만 달러를 처음 투자하고 그 뒤 재투자를 한 결과 현재 자산이 4억 달러로 불어났다.

96년 진출한 현대자동차는 점유율이 하락 중인 인도 기업 마루티에 이어 내수 판매 2위를 달리고 있다. 인도 기업까지 통틀어 최대의 수출기업인 현대차는 30만 대 규모인 생산능력을 내년엔 두 배로 늘리기 위해 현재 확장 공사 중이다.

◆ 철저한 현지화 전략=기존 시장 지키기에 신경을 더 써야 할 정도로 이들이 뿌리내린 비결은 뭘까. 지난달 24일 첸나이 시내에서 50여 분 달려간 현대차 공장. 조립라인 한쪽에는 힌두교도의 상징물과 현대차 그룹의 경영전략을 나란히 배치한 공간이 눈길을 끌었다. 임흥수 법인장은 "대부분의 직원이 힌두교도인 점과 한국 기업이라는 사실을 두루 감안했다"고 설명했다. 인도인의 체형이나 생활습관에 맞추기 위해 연구개발센터를 가동한 것도 효과를 봤다.

LG전자는 초기부터 일본의 소니와 동일하거나 높은 가격을 책정해 고가품이라는 이미지를 심었다.

제품을 싣고 고객을 찾아가는 마케팅과 철저한 사후서비스도 소비자의 마음을 잡았다. 한국 기업들과 달리 일본.미국 기업들은 고전하고 있다. 소니는 최근 현지 공장을 접기로 했고, 중소형차 위주인 현지 시장 구조를 잘못 읽은 미국 포드사의 판매 실적도 저조하다.

◆ 성장 협력 여지 아직도 많아=첸나이에 진출한 지 9년 된 중소기업 평화정공의 신주호 법인장은 "인도 시장은 아직도 개척의 여지가 큰 대양"이라며 "잘만 하면 한국 경제가 여기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가깝다는 이유로 손쉽게 중국으로 몰려가지 말고 대체시장으로서 인도를 다시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LG전자 노이다 공단의 김인호 부장은 "남아시아뿐 아니라 중동과 아프리카에 진출하는 글로벌 생산거점으로서도 인도의 잠재력은 크다"고 말했다.

인도와 한국의 국가 차원의 경제협력 가능성도 매우 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 정부는 양국 간 '포괄적 경제 동반자 협정(CEPA)'이 발효되면 인도 수출이 28억 달러가량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인도 전국경제인연합회(CII)의 구르팔 싱 부회장도 "양국이 공동 협의에 착수한 CEPA 협정을 이른 시일 내에 타결하면 두 나라 다 큰 이득을 볼 것"이라고 말했다.

첸나이.뉴델리=장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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