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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투 풋볼 <1> 아프리카 축구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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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아크라 남쪽 바닷가 마을에서 공을 차는 아이들. 맨발로 공을 쫓는 아이들 사이에 한쪽 발에만 빨간 스타킹을 신은 선수가 눈길을 끈다.아크라(가나)=박종근 기자

축구는 11명만 하는 경기가 아니다.

축구의 매력을 느끼고,

참여하는 모두가

선수요 주인공이다.

본지는 2006 독일월드컵을 앞두고

세계 축구의 강자로 떠오른

아프리카 3개국(이집트.가나.토고)과

개최국 독일, 브라질을 현지 취재했다.

이들이 느끼는 축구의 즐거움,

서로 다른 풍토와 역사 속에서

쌓아온 축구 문화,

월드컵을 준비하는 모습들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기 위해서다.

'웰컴 투 풋볼-'.

"아프리카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게 축구고, 잘할 수 있는 것도 축구다."

가나의 수도 아크라 남쪽 바닷가 마을. 공터에서 아이들이 왁자지껄 떠들며 축구 경기에 한창이다. 어른 주먹만 한 돌들이 삐죽삐죽 나와 있는 맨땅에서 아이들은 맨발로 공을 찬다. 형편이 좀 나은 애들은 한쪽 발에 축구용 스타킹을 신었다. 가느다란 나뭇가지 두 개를 비닐 끈으로 연결한 게 골대다.

동네 대항 경기인데도 구경꾼이 꽤 많다. 페널티킥을 찰 때면 사람들이 키커 주위를 빙 둘러싼다. 날카로운 슛을 골키퍼가 막아내는 순간, 구경꾼들은 골키퍼를 껴안고 춤을 추며 한동안 난리법석을 피운다. 슛이 골대를 맞고 들어갔는데도 심판이 노골을 선언하자 흥분한 한 할아버지가 득달같이 달려들어 골대로 쓰던 나뭇가지를 뽑아 버렸다. 동네 청년들이 한편은 말리고, 한편은 '골대 수리'에 들어갔다.

아크라 시내에서는 테니스 코트만 한 시멘트 바닥에서 공을 차는 사람들을 만났다. 너비 1m도 안 되는 골대를 세워놓고 10여 명의 '덩치'가 골 넣기에 열중해 있다. 좁은 공간에서 상대를 요리조리 제치며 공을 갖고 노는 솜씨들이 보통이 아니다.

해질 무렵 콜리고노 해변을 찾았다. 카메라를 들이대자 모래사장에서 뛰놀던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재주를 피운다. 선 자세로 뒤로 팔을 뻗어 땅에 닿을 정도로 허리가 활처럼 휜다. 한 아이는 모래사장에서 열 번이 넘게 연속 공중제비를 돈 뒤 바닷물에 첨벙 뛰어든다. 놀라운 유연성이다(2002년 월드컵 당시 나이지리아의 아가호와가 보여준 골 뒤풀이를 연상시킨다. 그는 7번 연속 공중제비를 돌아 탄성을 자아냈다). 사람들은 석양이 야자수 나무를 물들이고 대서양으로 떨어질 때까지 공을 찼다. 마을 청년대표 격인 켄(37)이 말했다. "마을의 단합을 이루고 남녀노소가 어울리는 데는 축구만 한 게 없죠."

'진짜 아프리카'라고 일컬어지는 사하라 사막 이남에서는 사람들이 언제나, 어디서나 축구를 한다. 대충대충 하는 게 아니라 땀을 뻘뻘 흘리며 정말 열심히 한다. 공 하나만 있으면 수십 명이 하루 종일 즐긴다. 리듬감과 유연성도 타고났다. 프로축구 선수가 되면 팔자를 고칠 수도 있다.

가나축구협회 코피 은시아 사무총장은 "아프리카 사람들은 시멘트든 풀밭이든 어디서나 축구를 한다. 매우 좁은 공간에서도 축구를 하기 때문에 기술을 빨리 습득한다. 체격과 체력도 좋다. 지금은 '잠자는 거인(sleeping giant)'이지만 곧 아프리카 축구가 세계 정상에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아프리카 축구의 급성장에는 1957년 시작된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대회가 큰 기여를 했다. 아시안컵이나 유럽선수권 등 다른 대륙별 대회는 4년마다 열리지만 네이션스컵은 2년 주기다. 올해는 1월 21일부터 2월 10일까지 열려 개최국 이집트가 우승했다. 이번 대회 출전 선수 중 250명 이상이 유럽을 비롯한 해외 리그에서 뛰고 있다. 네이션스컵이 열리면 최대 수백 명에 이르는 각국 응원단이 비행기를 타고 개최국으로 모여든다. 이슬람 국가인 이집트 여성도 경기장을 찾아 얼굴에 국기를 그려넣고, 큰 소리로 응원전을 펼쳤다. 관중석은 각국 전통 복장과 춤, 타악기 소리로 들끓는다. 각 팀에는 '공식 주술사'도 있다. 독일월드컵에서도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항아리를 이고 경기 내내 주문을 외우는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이집트.가나.토고=정영재 기자<jerry@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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