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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바다와 두레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동해안 푸른 바다, 영일만 일대해안이 죽어가고 있다. 침몰된 유조선에서 흘러나온 벙커C유 등이 부근 해안의 어장과 양식장을 뒤덮는 바람에 어로작업이 불가능해짐은 물론 양식장에서 자라고 있는 각종 어패류가 기름 펄에 파묻혀 버린 것이다. 심한 풍랑이라는 천재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어민들에게 난데없이 기름벼락이라는 인재까지 겹치게 됐으니 설상가상격이다.
유조선에 의한 기름유출 사고로 우리 어장이 재난을 당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작년만 해도 서해안의 영흥도와 흑산도 근해에서 두 차례나 대형유조선 좌초사고가 발생, 막대한 피해를 낸바 있다. 해양경찰대 집계를 보면 해상교통량이 증가하고 선체가 대형화됨에 따라 바다의 기름오염은 해마다 약20%씩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바다의 기름오염은 유조선의 파손이나 침몰은 물론 선체의 청소때 고의로 버리는 폐유나 육지에서 버려지는 산업페유에 의해서도 발생한다. 그러나 이 가운데 85%가 선박에 의해서 오염이 발생한다는 집계는 바다의 기름오염 주범이 선박이라는 사실이 분명해 진다.
이토록 선박의 기름유출 사고가 빈발함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비한 방재대책은 전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영일만 사고의 경우만 해도 해경과 민간업체에서 동원된 10여척의 방재선이 기름제거작업에 나서고 있으나 피해 범위가 워낙 넓고 장비가 부족해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그야말로 바닷물을 두레박으로 퍼내는 격인 모양이다. 심지어는 유조선의 침몰 해역이 수심이 깊어 정확한 위치조차 모르고 있다니 인양작업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음은 정한 이치다.
드넓은 해안 모래밭에 시커멓게 엉겨있는 기름을 몇몇 어민들이 호미로 긁어내고 있는 꼴이란 문명 속에서 원시를 보는 느낌마저 든다.
현행 해양오염방지법(39조)에는 내무부장관이 「긴급한 해양오염 방재를 위해 인력 및 장비의 동원을 관계행정기관에 요청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그러나 이제까지 실제로 관계기관의 신속한 동원체제가 이루어진 적이 없다. 연안경비를 주임무로 하고 있는 해양경찰대가 사고 때마다 동원되지만 장비와 전문인력의 태부족으로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방재가 불가능한 실정이다.
사고는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 최상책이다. 그러나 그 다음에는 완벽한 사후대비가 신속하게 취해져야 한다. 방제작업이 늦어지면 그만큼 오염은 확산되고 피해는 늘어나게 돼있다. 해양오염사고에 신속히 대처할 수 있는 정부차원의 종합동원체제가 마련돼야 하겠다.
대부분의 유럽국가들은 「해양오염 방재센터」나 출동대기 .기구가 구성돼 있어 오염사고가 발생하면 즉시 방재에 나서고 있다고 한다.
바다가 우리의 식량자원의 보고라는 인식 아래 바다오염을 방지하는데 적극적인 시책을 촉구한다.
영일만 일대의 어민 피해를 기름이 계속 유출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산출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피해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피해 어민 가운데는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는 영세어민들도 많으리라 짐작된다.
전체적인 피해액과 보상기준을 산정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우선 생계를 위협받는 영세어민들로부터 시작해서 조속하고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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