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적 정서 능숙하게 요리 … 아시아계 첫 감독상 거머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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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그는 일찌감치 미국과 인연을 맺었다. 1975년 대만 국립예술대학을 졸업한 뒤 미국에 건너가 뉴욕대와 일리노이대에서 영화를 공부했다. 92년 '쿵후선생'으로 데뷔한 이후 초기에는 주로 홍콩에서 활약했다. 당시 대표작은 '결혼 피로연'(1993년)과 '음식남녀'(94년) . 미국인과 대만인 남성들의 동성애를 다룬 '결혼 피로연'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금곰상을 받으며 국제적인 관심을 끌었다.

할리우드 데뷔작은 제인 오스틴의 19세기 영국 소설을 원작으로 한 '센스 앤 센서빌리티'(95년)다. 이후 주로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면서 미국 중산층 가족의 해체를 그린 '아이스 스톰'(97년), 남북전쟁을 다룬 '라이드 위드 데블'(99년), 만화와 TV 시리즈로 익숙한 '헐크'(2003년) 등 다채로운 소재와 장르의 영화를 선보였다.

2001년에는 청나라 시대를 배경으로 한 무협물 '와호장룡'으로 처음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올랐다. 상을 받지는 못했다. 대신 이 작품은 외국어영화상을 비롯해 촬영.미술.작곡 등 4개 부문에서 상을 받았다.

2000년 영화 홍보를 위해 한국을 찾은 그는 동양인이면서 미국적 정서를 능숙하게 표현하는 비결에 대해 "중국 요리를 할 때보다 서양 음식을 만들 때 더 조심하듯 그렇게 주의하다 보면 더 세심하게 그들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는 게 아닌가 싶다"고 설명했다.

애니 프루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브로크백…'으로 마침내 6일 대망의 감독상을 받은 그는 "영화 속 주인공인 에니스와 잭에게 감사한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사랑에 대한 작은 영화일 뿐인데 이렇게까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줄은 몰랐다"고 덧붙였다. 논란이 된 동성애에 대해선 "동성애라는 소재 자체보다는 금지된 사랑을 표현한다는 데 매력을 느꼈다. 이 영화는 남성 또는 여성 동성애자의 사랑만 아니라 모든 사랑의 위대함에 대해 얘기하는 작품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수상 직후 기자회견에선 '브로크백…'이 자신의 영화인생에서 각별한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 영화를 하기 전에는 은퇴하고 싶은 심정이 간절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법을 가르쳐 줬다"고 말했다. 기대했던 작품상을 경쟁작 '크래시'에 빼앗긴 데 대해선 "후보들이 모두 최선을 다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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