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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부 신설에 바란다-김성호<중앙일보 출판기획위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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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신임 정한모 문화공보부 장관이 중대한 발언을 했다.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민중예술 등 젊은 계층문화의 포용은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무리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소신껏 처리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비록「전문가의 의견 청취」나 「무리하지 않는 범위」등의 전제가 붙긴 했지만 전임 두 장관(이웅희·이원홍)이 민중예술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표시한데 비하면 획기적인 정책전환이라고 할 수 있겠다.
꼭 무슨 정책이 있어야만 문화·예술이 발전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예술 창작 등의 정신적 노작은 기본적으로 예술가의 개인적 창조능력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임 장관의「포용」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또 취임 3개월 이내에 문화부를 발족시키겠다는 6공화국의 의지는 과연 무엇인지 자못 궁금한바 크다.
민중예술은 거칠다. 중시는 비속한 어휘를 원하고 욕설도 서슴지 않는다.
민중 미술은 고생하던 시절의 우리를 그린다. 꾀죄죄한 바지저고리에 몰골은 말라 비틀어졌다.
민중예술은 저항의 예술이다. 작품에 사회의 메시지를 담아야 한다며 현실을 외면하지 말라고 외친다.
과거 이들의 작품 출간은 수시로 규제 받았고 전시회 등은 강제 철거당하기도 했다. 강한 거부감을 표시하는 당국의 「문화정책」이 발동된 것이다. 포용이 아니고 대응의 정책인 셈이다.
과연 이 같은 대응의 문화정책이 꼭 필요했는지는 보는 이에 따라 다르겠지만 주위의 공감을 얻지 못한 것만은 확실하다. 그래서 자연스럽지 못한 문화정책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민중예술이 바탕으로 하는 그 현실이라는 것도 시간이 지나면 달라지게 마련이다. 예술은 수용하는 사람들의 호응을 얻지 못하면 과연 그 예술이 뿌리를 내렸다고 볼 수도 없다. 좋은 예술이냐, 나쁜 예술이냐의 판단은 정치나 정부가 할 일이 아니다.
자연스러운 문화정책은 민중예술을 대중예술의 한 장르로 인정하는 일이다. 한국적 표현주의라고나 할까.
부심이 심하고 복잡 다기한 예술의 장르에 대해 정부가 일일이 신경을 쓰고 어떤 것에 대해거부감을 표시한다면 그처럼 피곤한 일도 없을 것이다. 표현의 자유는 헌법에조차 보장된 국민의 권리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논쟁은 문화·예술계에 맡길 일이다. 일부 평론가들은『민중문학은 이미 노동운동의 주도권 쟁탈수단으로 전락해 있다』고 공격한다.
감정을 직접적으로 전달한다는 표현주의는 그것이 극단화되면 문학을 삐라로, 회화를 포스터로 전락시킨다. 정부가 나서서 뭐라 하기 전에 이미 수용가들이 판단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표현의 영역을 확대하려는 예술가들의 노력을 평가하는 일이다. 실험·전위예술의 등장은 현대예술의 질과 양을 풍성하게 하고 있다. 「르느와르」「셰익스피어」만을 예술로 치던 안목에선 민중예술의 등장은 당연히 충격적인 일일 것이다.
국가와 사회 전체가 전환기에 처한 우리 나라에선 예술계의 조그만 충격은 즐거움을 주는 일이기도 하다.
신임장관의「무리하지 않는 범위의 민중예술 포용」이 과연 어떤 모양으로 우리에게 다가올지 한번 기대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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