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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방적 지시 대신 진지한 토론|노 대통령 취임 후 첫 국무회의 표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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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노태우 대통령 취임이후 처음으로 26일 오후 열린 청와대 국무회의는 좌석배치·회의진행방법 등 외형적인 스타일뿐만 아니라 참석자들간에 의제를 놓고 진지한 토론을 벌여 내용 면에서도 종전과는 크게 다른 모습.
특히 청와대 국무회의는 일방적인 보고나 지시를 듣는 게 관례였으나 이날의 첫 국무회의는 1시간 가까이 진지한 토론을 벌여 제6공화국 국정심의의 새로운 모습을 보였다.
다음은 이날의 토론내용.
▲노 대통령=최근 강도·절도·폭력사범이 늘어나고 흉포화 해져 국민들이 매우 불안해하고 있다. 내무장관은 이에 대한 대책을 말해보라.
▲이상희 내무장관= 국민들께 걱정을 끼쳐 대단히 죄송하다. 86년과 대비해 87년의 통계를 보면 살인·강간·절도사건은 큰 변동이 없다. 그러나 강도는 9·8%, 폭력은 10% 늘어났고 특히 이런 범죄가 집단화되고 차량을 이용해 기동화 되고 있다. 강도의 경우 52·4%가 단독범행이 아니며 폭력도 42%가 집단적으로 이뤄졌다. 또 노상강도도 22% 늘었고 청소년 살인도 9·5% 늘었다.
차량을 이용한 범죄가 전체 범죄건수의 50·5%에 이른다. 정부는 이동파출소 운영, 우범지역 집중단속, 아파트지역 순찰강화 등 예방활동과 초동수사 강화 등을 하고 있다. 또 파출소의 인력증원, 차량지급 문제, 수사요원 증가, 수사 비 증액을 관계부처와 협의중이다. 국민들의 불안을 줄이는데 최선을 다하겠다.
▲노 대통령=국민불안을 덜어 주는 것이 제일 중요하고 또 올림픽에 대비해서라도 세계사람들에게 피해가 없이 해야겠다. 요즘서울강남아파트지역 같은데 서는 강·절도를 당하고도 신고를 안 하는 경우가 많다는데 그 이유를 밝혀 내고 시민들에게 고발하는 풍토를 조성해 줘야겠다. 그러면 물가문제에 대해 얘기하자.
국민들이 물가인상을 크게 불안해하고 피부로 느끼는 물가인상이 상당한 모양이더라. 부총리 말해보라.
▲나웅배 부총리=기획원장관에 내정되어 여러 사람을 만났더니 10명중 8∼9명은 물가를 걱정했다.
금년 들어 도매 1·2%,소비자물가가 2%올랐는데 연말이면 7∼8%까지 가지 않겠느냐고 걱정하는 것 같다.1∼2월중에는 파·시금치·돼지고기·닭고기·쇠고기 값이 많이 올랐다. 민속의 날이 중간에 낀 것도 인상의 한 요인이었다.
▲노 대통령=물가는 정부대책도 중요하지만 물가오름세에 대한 국민의 심리적 요인이 더 중요하다.
▲나 부총리=각 부처는 물가가 잡혔다고 안심할 때까지 어려운 일이 있어도 공공요금 인상만은 자제해 주었으면 좋겠다. 반면에 원화 평가절상으로 물가인하 요인이 생긴 품목은 인하를 적극 유도해야겠다.
▲노 대통령=지금 돼지고기 값은 어떻게 돼 가고 있나.
▲나 부총리=그동안 많이 올랐는데 더 오를까 봐 특별관리하고 있다.
▲노 대통령=양담배와 쇠고기수입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걱정하고 있다. 미국과의 무역마찰도 고려해 국민들에게 확고한 정책방향을 설명할 필요가 있는 게 아니냐. 이제 정부도 국민에게 설득할 것은 설득하고 밝힐 것은 소신 있게 밝혀야겠다.
▲사공일 재무장관=양담배수입문제에 관해서는 미국이 3월10일 이후 한번 더 협상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양담배는 값과 유통구조가 문제인데 현재 우리의 양담배 시장점유율은 0·2%다. 대만은 20%,일본은 10%다. 국내 점유율이 1%가 되면 우리의 수입액이 1천5백만 달러가 된다.
▲윤근환 농림수산장관=83년 소 값 파동 때 두 당 1백50만원씩 주고 산 송아지가 어미 소가 돼도 그보다 훨씬 떨어져 농민들이 심각한 어려움을 겪었다. 미국의 관광호텔용 수입요구에 농민들은 소 값 파동이 다시 일어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노 대통령=국민피해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고 국민들이 이해하는 선에서 개방할 것은 개방해야겠다. 우리는 이제 세계의10대 교역 국 중 하나인데 작은 이해로 큰 국가의 이익이 훼손되게 해서는 안 된다.
▲김영식 문교장관=이미 초·중·고등학교의 교과서를 모두 분석해 시장경제체제를 이해하는 식으로 금년 봄부터 교과서를 개편한다.
▲노 대통령=좋은 일이다.
▲이봉서 동자부장관=쇠고기 수입에는 양면성이 있다는 것을 국민들이 잘 모르는 것 같다. 물론 농민들의 피해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쇠고기를 싼값에 더 많이 먹게 하는 것이 전체 국민들에게는 바람직하다. 농민대책을 강구하면서 싼값의 쇠고기 수입을 늘리는 것은 바람직하다.
압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그런 식으로 정책이 결정될 수 있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알려 균형된 판단과 이해를 구하도록 하자.
▲윤 농림수산부장관=어떤 일이 있어도 소값 떨어지는데 대한 대책부터 강구해 놓고 수입해야 한다.
▲나 부총리=쇠고기수입은 우리에겐 특수한 문제다. 83년 소 값 파동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를 불러 일으켰다. 농민을 이해시키면서 점진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미국도 우리의 입장을 점차 이해하리라 생각한다.
▲노 대통령=다음 일정 때문에 오늘 토론은 이 정도로 하고 관계 장관들은 별도로 더 토론을 계속하라. 그리고 국무위원들의 지지한 토론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주자.
이날 회의에서 노 대통령은 총무처 총무국장이 회의진행을 일일이 보조하던 방법을 바꾸어 대통령자신이 바로 『지금부터 국무회의를 개의하겠다』고 한 후 의사 봉을 삼 타.
좌석도 대통령이 혼자 떨어져 앉고 멀찌감치 국무위원들이 두 줄로 마주보고 앉던 방식을 바꾸어 타원형 테이블 끝에 자신이 앉고 거리를 떼지 않고 국무위원들을 빙 둘러앉게 했다.
노 대통령은 『오늘 회의는 첫 번째이므로 의안심의에 앞서 국정운영에 관한 나의 생각부터 말씀드리겠다』며 내각이 유의할 점을 말했는데 단 한번도「지시」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당부한다』『부탁드린다』고 표현.
회의장에는 대통령 휘장인 봉황무늬가 사라졌으며 회의에 앞서 김용갑 총무처장관이 국무위원들에게 『대통령 지시 중 중요한 소관사항 외에는 굳이 일일이 메모하지 않아도 된다』 고 주문해 이채. <전 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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