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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CEO 200명 두 번 바람 맞히고 자리 뜬 백운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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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왼쪽)이 18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얘기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왼쪽)이 18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얘기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한 중견기업 최고경영자(CEO)인 A씨는 지난 9월 27일과 12월 6일 오전 집무실에 앉아 혼자서 시간을 보냈다. 평소 같으면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며 가급적 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니던 그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당초 예정돼 있던 ‘CEO 간담회’를 두 번 연속 취소한 게 그의 오전 일정을 흐트려 놓은 것이다.

현장에서 #9월 한 차례 연기한 CEO 간담회 #이달 초 또 다른 일정 이유로 취소 #상의·무협회장 만남선 먼저 자리 떠 #CEO “다른 약속 다 미뤄놓았는데 #장관이 분초 다투는 경영 몰라 섭섭”

A씨는 “간담회에 맞춰 다른 약속을 다 미뤄 놓았는데 한국 기업을 총괄하는 주무부처 수장께서 CEO의 시간 가치를 모르는 것 같아 섭섭했다”고 말했다.

백 장관의 기업인에 대한 부적절한 처신에 재계가 속을 끓고 있다. 기업인과 잡은 공식 약속을 두 번이나 일방적으로 연기하고, 또 다른 기업인과의 회의에서는 도중에 자리를 뜨는 등 기업 관련 주무부처 장관이 오히려 기업을 홀대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백 장관은 지난 6일 오전 기업인들과 ‘CEO 간담회’를 열고 강연과 함께 정부의 주요 현안, 산업정책 방향 등을 논의할 예정이었다. 약 200명의 CEO, 고위 임원들이 참석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는 ‘산업혁신 민관전략회의’에 참석해야 한다는 이유로 이를 취소했다. 사실 이 간담회는 애초에 9월 27일 열릴 계획이었으나 백 장관이 다른 일정이 있어 참석이 어렵다며 행사를 취소해 다시 잡은 자리였다. 대신 그가 잡은 다른 일정은 산업부 주최로 열린 ‘에너지플러스 2017 전시회’다. 이 행사에는 국회 소관 상임위 소속 일부 의원이 자리를 함께해 뒷말을 낳았다.

논란이 될 처신은 이뿐이 아니다. 백 장관은 6일의 CEO 간담회를 취소하고 참석한 ‘산업혁신 민간전략회의’에선 회의 도중 자리를 떴다. 이 회의는 공식적으로 백 장관과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김영주 무역협회 회장 등 3명이 처음으로 만나는 자리다. 다른 경제단체 대표는 물론 주요 대기업 CEO도 참석했다. 산업부는 회의 참석자들의 의견을 반영해 산업정책 방향을 수립·발표할 예정이었다.

당시 한 참석자는 “백 장관이 대외경제관계장관회의에 급하게 들어가게 됐다며 중간에 일어섰다”며 “그래서 박용만 회장이 나머지 회의를 대신 주재했는데, 회의 성격상 모양새가 적절치 않았다”고 전했다.

이런 논란에 대해 산업부는 백 장관의 일정상 불가피했다고 해명했다. 산업부 고위 관계자는 CEO 간담회 연기에 대해 “행사를 주관하는 대한상의와의 커뮤니케이션에 착오가 있었다”며 “조만간 일정을 조율해 다시 자리를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회의 도중 자리를 뜬 것에 대해서는 “대외경제관계장관회의에는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참석하기로 했지만, 심한 몸살로 참석이 힘들어지면서 부득이하게 백 장관이 갈 수밖에 없었다”며 “당시 참석자들에게 양해를 구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기업 관련 업무 전반을 소관하는 산업부 장관이 ‘기업 패싱’으로 보일 수 있는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에 서운함을 감추지 않고 있다. 새 정부의 반기업·반시장 정책 기조가 이어지다 보니 정부 내에서 그나마 기업을 챙겨야 하는 산업부 장관마저 기업을 도외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백 장관은 과거 한·미 자유무역협정 폐기 가능성을 언급하거나 중국 투자를 자제하라는 식의 돌출발언으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이영조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정부의 정책이 반기업·친노동으로 흐른다는 인식이 강한 상황에서 산업 이슈의 책임자로선 처신이 부적절했다”고 지적했다.

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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