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맨해튼에 아이 울음 소리 다시 들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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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맨해튼의 한 요가 교실에서 어린이들이 '카르마키즈 요가'를 배우고 있다.

고층빌딩이 숲을 이룬 미국 뉴욕 맨해튼에 전례없는 '베이비 붐'이 일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맨해튼의 출산율은 매우 낮았다. 또 웬만한 가정은 아이를 낳은 뒤엔 육아 환경이 좋은 인근 뉴저지주나 코네티컷주로 이사하는 게 '정석'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얘기가 달라졌다. 출산율이 늘었을 뿐 아니라 주변 지역으로 이사 갈 여유가 있어도 맨해튼에서 자녀를 키우는 경우가 크게 늘었다. 실제로 미 인구통계청에 따르면 2000~2004년 맨해튼에 사는 5세 이하 유아의 수가 26%나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미국 전체의 출산율 증가는 4%에 그쳤다.

이 같은 현상은 우선 2001년 9.11 테러 이후 맨해튼 금융가 등에서 일해 온 직장 여성들의 가치관이 크게 바뀌었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주변의 많은 동료가 죽어가는 것을 직접 목격한 직장 여성들 사이에서 가족을 가지려는 추세가 급증하면서 출산율도 동반 상승했다는 것이다.

뉴욕이 범죄로부터 안전해졌다는 사실도 한몫 한다. 루돌프 줄리아니 전 시장에 이어 마이클 블룸버그 현 시장의 대대적인 범죄소탕 작전으로 뉴욕의 범죄는 2001년 이후 20%나 줄었다.

미 연방수사국(FBI) 조사 결과 뉴욕은 미국 10대 도시 중 범죄율이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연히 아이들을 맨해튼에서 키우려는 부모가 늘어난 것이다.

더불어 맨해튼의 베이비 붐으로 탁아소 등 유아용 시설도 크게 늘었다. 육아가 더욱 쉬워진 것이다. 유아 전용 헤어 살롱은 물론 아이들만을 위한 헬스클럽, 요가 센터까지 등장했다. 특히 놀이방 옆에 책걸상과 무선 인터넷은 물론 회의실까지 갖춘 첨단 탁아소가 출현하면서 직장 여성들이 육아와 일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여건까지 마련되고 있다.

여기에 우수한 여성 인력을 놓치지 않으려는 기업들의 노력도 작용하고 있다. '출산 때문에 여성 전문 인력들을 놓치면 손해'라고 판단한 금융회사들이 앞다퉈 '당근'을 제시하고 나선 것이다. 실제로 통상 3개월이던 출산 휴가를 1년으로 연장하는 회사가 급속히 늘었다.

다만 맨해튼 안에 비싼 명문 사립학교들은 많지만 제대로 된 공립학교는 별로 없다는 게 아직은 문제다. 하지만 어느 곳보다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맨해튼인지라 이 문제도 머잖아 해결될 거라는 낙관론이 지배적이다.

뉴욕=남정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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