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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미·중서 커지는 ‘한반도 군사옵션’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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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북핵 문제 해법으로 어렵게 수면 위로 떠올랐던 ‘대화론’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있다. 동시에 군사적 충돌 가능성은 점점 고조되고 있다. 동전의 앞·뒷면 같은 대화론 실종과 전쟁 가능성 대두가 오늘 한반도의 위기상황을 보여 준다.

중국선 “전쟁 가능성 역사상 최고” #틸러슨은 ‘조건 없는 대화론’ 철회 #북, 비핵화 대화 테이블 거듭 거부

미국과 중국, 일본의 한반도 전쟁 경고음은 전례 없이 높다. 정작 당사자인 한국만이 태연할 뿐이다.

16일 중국 베이징에선 환구시보 주최로 개최된 공개 토론회에서 ‘한반도는 전쟁을 향해 치닫나’란 세션이 열렸다.

저명 국제정치학자인 스인훙(時殷弘) 인민대 교수는 이 자리에서 “한반도는 전쟁 가능성이 역사상 가장 큰 시기에 직면해 있다. 언제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난징(南京)군구 부사령관을 지낸 왕훙광(王洪光) 예비역 중장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는 “전쟁은 언제라도 시작될 수 있다. 미국과 한국이 연례 군사훈련을 시작하는 내년 3월 전에 가능할 수 있고 당장 오늘 밤에 시작될 수 있다”며 “중국 동북 지역에 (전쟁 발발에 대비해) 방어적 성격의 동원령을 내려야 한다”는 제안까지 했다.

미국에선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제안한 “무조건 대화”의 불꽃이 사흘 만에 꺼졌다. 미국 내 보수진영의 사퇴 압박까지 받은 틸러슨 장관이 자진 철회했다.

틸러슨 장관은 15일(현지시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장관급 회의에서 당초 연설문 원고에 있던 “전제조건 없는 대화” 표현을 빼고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북한의 위협적 행동의 지속적인 중단(sustained cessation)이 있어야 한다”고 못 박았다.

틸러슨 장관은 또 “북한에 대한 압박 캠페인은 비핵화가 달성될 때까지 계속돼야만 하며, 계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 강경파 군사 옵션 힘 받을 수도 … 중국선 ‘북한 핵 용인론’도 대두 

이는 그가 지난 12일 한 토론회에서 “북한이 원하면 언제든, 전제조건 없이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한 데서 “180도 유턴”(뉴욕타임스)한 것이다. 틸러슨은 안보리 회의에서 ‘전쟁 불사’까지 언급했다. 그는 “북한의 공격에 맞서 필요한 모든 수단을 사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협상파인 틸러슨 장관의 후퇴는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 강경파의 대북정책 주도로 이어져 군사적 옵션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쟁 가능성을 고조시키는 또 다른 요인은 국제 공조의 미묘한 균열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대북 압박 강도를 최대한으로 올릴 의사가 없다. 중국은 대북 원유 파이프를 잠그려고 하지 않는다. 러시아는 북한의 파견 노동자를 계속 받아들이고 있다. 중·러는 오히려 한·미 군사훈련을 비판하기에 급급하다.

게다가 무엇보다 북한이 ‘핵보유국’을 주장하며 비핵화를 위한 대화를 거부하고 있다. 자성남 유엔 주재 북한대사는 안보리 회의에 참석해 비핵화를 위한 협상 테이블에 나오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중국에선 ‘핵 용인론’까지 등장하고 있다. 환구시보 토론회에서 주펑(朱鋒) 난징대 국제관계학원 교수는 “중국이 파키스탄의 핵보유에 반대한 적이 없다”며 “중국은 북한의 핵보유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중 기준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북한이 ‘핵 굳히기’에 들어갈수록 미국의 군사적 옵션 사용 가능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15일 기자들에게 “우리는 (압박 캠페인에) 많은 나라의 동의와 지지를 받고 있고 효과가 있기를 바란다”며 “북한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볼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트럼프가 기대를 걸고 있는 압박 조치 역시 북핵 문제 해결에 돌파구를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게 국제사회의 고민이다.

베이징·워싱턴=예영준·정효식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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