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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과 결혼하는 시대 올까…세계 젊은 혁신가, 미래 그린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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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2호 14면

‘知性 마셜 플랜’ 70년… 잘츠부르크 글로벌 세미나 아시나요

임현동 기자

임현동 기자

사운드오브 뮤직 촬영지 레오폴츠크론성. 한때 나치가 ‘유대인 재산’으로 몰수해 여름별장으로 쓰기도 했다. 지금은 전 세계의 문화 혁신가들이 모이는 공간. 호텔로도 쓰이고 있다.

사운드오브 뮤직 촬영지 레오폴츠크론성. 한때 나치가 ‘유대인 재산’으로 몰수해 여름별장으로 쓰기도 했다. 지금은 전 세계의 문화 혁신가들이 모이는 공간. 호텔로도 쓰이고 있다.

모차르트의 고향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는 뮤지컬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1965)의 실제 배경으로 유명하다.

스티븐 샐여 SGS CEO #2차 대전 후 ‘지성의 재건’ 모토 #'사운드 오브 뮤직' 촬영지 옛 성 #레오폴츠크론에 둥지 틀고 토론회 #70년간 160개국 2만5000명 세미나 #코피 아난 총장, 힐러리도 거쳐가 #북·미 대화 연다면 기꺼이 장소 제공 #"혁신, 예술적 창의성에서 나와" #내년 2월 소설·음악·연출가 모여 #50년 후 AI와 함께 하는 세상 예측

트랩 대령의 일곱 아이가 도레미송을 부르며 뛰어드는 호수와 파티가 열린 저택은 바로 잘츠부르크의 문화유산인 레오폴츠크론성이다. 18세기 초에 건립된 로코코풍의 이 성이 제2차 세계대전 후 유럽의 지성을 재건하고, 전 세계 젊은이들의 아이디어 인큐베이팅과 네트워킹 공간으로 활용돼 온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비영리단체(NPO) ‘잘츠부르크 글로벌 세미나(Salzburg Global Seminar·SGS)’가 레오폴츠크론에 둥지를 틀고 지난 70년간 해 온 일이다. 2005년부터 12년째 SGS를 이끌고 있는 스티븐 샐여(Stephen Salyer·사진) 최고경영자(CEO)가 지난주 한국을 찾았다.


‘사운드 오브 뮤직’은 친숙한데 SGS는 생소하다.
“그동안 각국의 파트너 기관과 참석자들을 부각해 왔는데 이제 SGS의 이름을 알려야 되겠다는 생각도 든다. SGS는 전후 서유럽 재건 프로젝트 마셜 플랜이 시작된 1947년 미 하버드대로 유학 간 오스트리아 학생 3명이 지성의 재건, ‘마셜 포 더 마인드(Marshall for the Mind)’를 주창하며 시작됐다. 레오폴츠크론의 소유주 막스 라인하르트(1873~1943)의 부인이 성을 세미나 장소로 내줬고 이후 70년 동안 160개국 2만5000명이 이곳을 다녀갔다. 다보스포럼처럼 1000명이 모이는 대형 행사가 아니고 말 그대로 세미나다. 창의적인 생각을 가진 전 세계 20~30대 젊은이들이 토론한다. SGS는 애초부터 부자와 유명 인사들을 위한 바가 아니라 떠오르는 스타, 들어본 적은 없지만 미래의 다른 세상을 열어 갈 사람들의 공간이다.”
어떤 이슈를 다루나.
“전후엔 피폐해진 미국과 유럽의 문화 및 사상을 복원하는 이슈를, 세계화가 된 지금은 보건과 교육·환경·경제·법치주의 등 보다 나은 세계를 위한 이슈를 다루고 있다. 매번 세미나에 20여 개국의 정부·NGO·비즈니스·학계에서 온 인사 50여 명이 참석한다. 최근 다룬 주제는 ‘고령사회와 치매’였다. SGS가 최대 역점을 두는 게 영컬처 이노베이터스(Young Cultural Innovators·YCI) 프로그램이다. 서울·워싱턴·도쿄·부에노스아이레스 등 19개 도시의 젊은이들이 참가한다. 한국에선 글로벌 문화운동 단체인 ‘월드컬처오픈(WCO)’ 등이 함께하고 있다. 20~30대 문화·예술인들이 일주일간 잘츠부르크에 모여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꿈을 현실화하는 지혜를 모은다. 지난 3년간 한국에서 15명이 다녀갔다. 학술회의가 아닌 행동 지향적 워크숍이다.” 

샐여 CEO는 인터뷰 도중 YCI 프로그램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전 세계 모든 곳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혁신은 예술적 창의성을 통해 나온다”며 “젊은 문화·예술 혁신가들에게 정부나 사회가 비전을 제시하고 지원해 그들의 아이디어가 융합 발전하도록 서로를 연결해 주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말했다.

“내년 2월 소설가·음악가·연출가 등이 모여 그들의 시선과 생각으로 2050년, 2100년 인류의 미래 모습을 가늠해 보는 세미나를 연다. 우리의 손자·증손자들이 로봇과 결혼하는 시대가 올까? 미래는 어떨까. 정말 알 수 없다. 하지만 정치인도, 경제학자도 아닌 새로운 방식으로 사고하는 문화 혁신가들의 열린 아이디어로 그 단초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다.”

인공지능(AI) 시대와 문화·예술을 어떻게 융합할 수 있나.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에 갇히기 마련이어서 나는 다른 이들의 생각이 담긴 소설·시를 많이 읽는다. 더 중요한 건 다른 문화 속의 사람들 내면과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시각을 통해 세상을 읽는 것이다. 좀 더 많은 문학작품이 번역돼야 한다는 생각에서 번역 기술의 진화에 대한 세미나도 수차례 열었다. 미래에 번역 칩을 뇌에 간단히 이식해 한국어로 바로 얘기할 수 있는 세상이 올 수도 있다. 스티븐 호킹 박사는 우주에 외계인이 있다면 유기체가 아닌 기계일 것이라고 했는데 그게 맞을 수도 있다. 50년 뒤, 100년 뒤 인류의 미래를 누가 알겠는가.”
이번에 한국을 방문한 목적은.
“서울에 자주 온다. 한국국제교류재단(KF)과 한국개발연구원(KDI), WCO 등 파트너십을 맺은 기관들을 찾아 YCI 프로그램 등을 설명하고 프로그램 협력 강화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KF에선 지난 4년간 매년 인턴(3개월 과정)을 선발해 SGS로 파견했다. 너무 감사한 일이다. 한국은 세계에 큰 영향을 주는 나라다. 작지만 큰 자리를 차지한다. 대학과 시민단체, 기업 등 여러 분야와 관계를 강화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홍구 전 총리가 SGS 이사로 활동하셨는데 지금도 많은 영감을 주고 있다.”

2010년 ‘아랍의 봄’ 이후 열린 세미나에 관여한 이성현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SGS는 작은 규모이지만 70년의 역사를 통해 각국의 유럽 네트워크 거점 역할도 하고 있다”며 “한국의 정부기관이나 학계·기업이 SGS와 협력을 강화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본의 경우 일본국제교류기금(Japan Foundation) 등 여러 기관이 장학 프로그램을 만들어 매년 15명 이상을 SGS의 펠로로 보내는 등 적극 참여하고 있다.

동북아시아나 한반도 이슈 등은 다루지 않나.
“최근에도 ‘홍콩의 미래’ ‘우리가 원하는 아시아’란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고, 한반도 통일과 북한 인권 문제도 다뤘다. 4년 전 유엔이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를 만든 뒤 미국과 유럽의 몇몇 인사가 비보도 조건의 세미나를 주선해 달라고 부탁했다. 중국과 러시아 관계자도 참석한 가운데 나흘 동안 세미나가 열렸고, 조사위원 3명 전원이 참석했다. 사실 SGS는 군사 싱크탱크도 아니고 안보 전략을 전문으로 하진 않는다. 하지만 우려스러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한반도 정세와 관련해 미국·북한의 대화 장소를 우리가 기꺼이 제공하고 싶다.”

샐여 CEO는 1947년 첫 세미나 이후 잘츠부르크에 계속 자리를 잡은 것은 오스트리아가 냉전기간 동서 진영의 사람들이 편하게 오갈 수 있었던 중립국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SGS는 어느 한 국가나 대륙이 아닌 전 세계의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일을 하고 있고, 그런 상징적인 차원에서 최근 도메인 주소도 www.salzburg.global로 바꿨다”고 강조했다.

SGS와 레오폴츠크론은 어떻게 운영하고 관리하나.
“레오폴츠크론은 1745년 로마 가톨릭 대주교가 지었다. 이후 주인이 여러 번 바뀌었는데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을 만든 연출가 막스 라인하르트가 성을 사들이면서 전기를 맞게 된다. 라인하르트는 20년 동안 자신의 전 재산을 투입해 성을 재건했다. 세미나 이후 SGS가 성을 매입했는데 문화유산을 관리하는 비용이 만만찮았다. 그러다 성을 호텔로 활용하면서 수익을 내 SGS 운영비의 30%를 담당하고 있다. 나머지는 기금과 기관 및 개인 기부자들의 기부로 운용된다.”
세미나를 거쳐 간 인사들은 누가 있나.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 힐러리 클린턴 전 미 국무장관 등 유명인들은 헤아릴 수 없지만 우리의 영웅들은 따로 있다. 3년 전 미국 볼티모어에서 온 YCI 참가자를 예로 들고 싶은데 2015년 볼티모어 폭동 직후 참석한 그녀는 잘츠부르크 YCI 팀원들과 아이디어를 주고받은 뒤 돌아가 볼티모어 수변 빛축제를 조직했다. 잘츠부르크의 네트워크를 활용한 결과 40만 명이 축제를 찾았고, 시는 50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또 가나에서 온 젊은이는 휴대전화로 위조 처방약을 감지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보급하는 비영리단체를 만들어 중국과 인도로까지 전파하고 있다.”  
참가자들은 어떻게 선정하나.
“기존의 참가자들로부터, 또 진행하는 프로그램의 파트너 기관에서 추천을 받는다. 희망자가 웹사이트를 통해 신청하는 방법도 있는데 SGS의 재원에 한계가 있어 후원자를 확보한 뒤 신청하면 좀 더 수월하게 심사를 진행할 수 있다. 매년 20여 세션의 세미나가 열린다.”

17년 동안 미국의 공영국제라디오방송(PRI) 회장을 지내는 등 언론계에서 오래 일한 샐여 CEO는 대학 졸업 후 기업가 존 D 록펠러 3세의 스피치 라이터로 일을 시작했다.

록펠러 3세와의 인연은.
“1970년대 초반 대학가가 반전(베트남전) 소요로 어지러웠을 때 미 정부가 대학생들을 감옥에 보내는 대신 대화로 끌어들이는 개입정책을 했다. 그때 대통령 직속 ‘인구 성장과 미래위원회’ 위원으로 선발됐다. 상원 인준까지 받았다. 역대 최연소인 19세 때다. 록펠러 3세가 위원회 위원장이었다. 위원회 2년 활동과 대학을 마치고 인구 증가 문제를 연구하기 위해 케냐를 여행하고 있었는데 록펠러 측에서 제1회 유엔 세계인구대회에서 록펠러가 연설할 기조발표문을 써 달라고 얘기했다. 이후 인구재단을 세운 록펠러와 계속 일을 하게 됐다. 정말이지 행운이었다. 행운이 당신을 비출 때 기회를 잘 잡고 최선을 다하라고 얘기하고 싶다.”

김수정 외교안보선임기자
kim.su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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