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피해 판정 지지부진…신청자 절반도 안 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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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들이 지난 8월 31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가습기살균제 참사 6주기를 맞아 "사망자의 수가 1천239명에 달한다"며 진상규명과 피해구제 특별법 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들이 지난 8월 31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가습기살균제 참사 6주기를 맞아 "사망자의 수가 1천239명에 달한다"며 진상규명과 피해구제 특별법 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건강 피해를 보았다며 정부에 조사·판정을 요청한 신청자 중에서 실제 판정을 받은 사람은 전체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피해 구제 급여를 지원하는 절차도 늦어져 피해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011년 이후 5927명 신청, 43%만 판정 #지난해 5월 이후 신청 4645명은 29%만 #살균제 사용 여부 등 확인에 시간 걸려 #환경부 "지난해 신청자 연말까지 판정"

14일 환경부에 따르면 2011~2013년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와 2014년 이후 환경부에 가습기 살균제 건강 피해 조사·판정을 신청한 사람은 모두 5927명이며, 이 중 판정이 완료된 경우는 2547명으로 43%에 그쳤다.
특히 지난해 5월 이후에 신청자 4645명 중에는 1348명만 판정을 받아 조사·판정 완료 비율이 29%에 머문 것으로 집계됐다.

지금까지 피해를 인정받은 신청자는 지난 13일까지 모두 404명으로 피해 판정이 완료된 2547명의 15.9%에 해당한다.
이들 중 폐 손상 피해가 확인된 경우가 389명이며, 태아 피해가 15명이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를 지원하는 환경보건시민센터의 최예용 소장은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여러 가지 형태의 건강 피해가 발생했는데, 정부는 폐 손상 판정하는 것조차 제때 마치지 못하고 시간을 끌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 소장은 "판정을 연구 용역 형태로 맡길 것이 아니라 국립환경과학원 등에서 집중적으로 판정해야 피해자에게 좀 더 빨리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구 용역에 참여하는 연구진이 전적으로 피해 조사·판정에 매달릴 수 없어 시간이 지연된다는 지적이다.

가습기 살균제 [중앙포토]

가습기 살균제 [중앙포토]

이에 대해 환경부 환경보건정책과 관계자는 "지난해에만 4000여 명이 조사를 신청한 바람에 판정이 늦어졌다"며 "지난해 신청자는 올 연말까지, 올해 신청자는 내년 상반기 중에 판정이 완료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피해 판정을 위해서는 의사의 진단이 필수적인데, 국립환경과학원에는 의사 자격을 가진 연구원이 없어 부득이 외부에 연구 용역 형태로 피해 조사·판정을 의뢰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환경부의 해명이다.

환경부는 대신 앞으로 폐 섬유화 등 폐 질환 외에 천식 피해에 대해서는 신속하게 판정이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금까지는 신청자가 실제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는지, 어떤 방식으로 가습기와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는지 등을 확인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이 부분이 확인된 이후에는 천식 등 추가 판정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게 환경부의 설명이다.
이와 관련 환경부는 올해 내에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위원회(위원장 안병옥 환경부 차관)를 한 차례 더 열어 피해 질환 추가 인정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다.

지난달 24일 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 및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 관계자,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 등 정치인들이 24일 오후 국회 본청 앞에서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사회적 참사법)이 통과된 뒤 마무리 자리를 갖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4일 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 및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 관계자,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 등 정치인들이 24일 오후 국회 본청 앞에서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사회적 참사법)이 통과된 뒤 마무리 자리를 갖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환경부는 지난달 말까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에게 총 59억원의 구제 급여를 지급했으며, 구제 계정을 통해서도 10억4000만원을 지원했다.
피해자에게 지급한 구제 급여는 살균제 제조·판매 업체를 대상으로 정부가 소송을 대신 진행해 받아내게 된다.
이와는 별도로 구제계정은 해당 기업이 폐업한 신청자나 피해자로 확정되지 않았더라도 피해 개연성이 있는 신청자에게 지급된다. 구제계정은 정부와 살균제 제조·판매 기업이 출자해 조성한 1250억원이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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