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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잇따르는 영장 기각, 적폐 수사 무리수 때문 아닌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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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법원이 김태효 전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과 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김 전 기획관은 이명박 정부 때 군 사이버사의 ‘댓글 공작’과 연루됐다는 혐의를 받아 왔다. 법원은 “피의자의 역할과 관여 정도에 다툴 여지가 있다”며 기각 사유를 밝혔다. 전 전 수석에 대해서도 “의심스럽기는 하나 증거가 이미 확보돼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전 전 수석은 두 번째 영장 기각이다.

군 사이버사 정치 관여 의혹에선 이미 김관진 전 국방장관과 임관빈 전 국방부 정책실장이 구속적부심을 통해 석방됐다. 김 전 기획관의 영장마저 기각되면서 이명박(MB) 전 대통령을 겨냥한 수사가 차질을 빚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애초부터 사이버사 문제를 MB까지 연결하려는 시도 자체가 무리한 것이라는 지적마저 일고 있다.

검찰은 법원의 결정에 반발하고 있다. 영장 재청구 여부도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익숙한 수순이다. 영장 청구→법원의 기각→검찰의 반발, 정치권과 네티즌들의 판사 인신공격→영장 재청구 패턴이다. 벌써 포털 댓글에서는 영장 기각을 결정한 판사에 대한 무차별적 비난이 시작됐다.

영장 기각에는 검찰의 부실한 수사에 일차적 책임이 있다. 법원은 ‘무죄 추정 및 방어권 보장 원칙’ 아래 불구속 재판을 강조하는 추세다. 검찰이 이런 시대적 흐름을 거스르다 제동이 걸리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특히 ‘적폐청산’ 같은 정치적 수사에서는 더욱 두드러진다. 최윤수 전 국정원 2차장과 김재철 전 MBC 사장의 영장 기각이 최근 사례다. 영장 심사를 앞두고 검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마저도 일어났다. 검찰이 권력과 여론을 의식해 인신 구속 자체를 일종의 수사 성과로 여기기 때문이다. 정치적 사건이라고 해서 인권 보호 정신이 예외가 될 수는 없다. 무리한 인신 구속 대신 증거를 바탕으로 한 정교한 수사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