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과 함께 사는 삶<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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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지난 13일 오후 서울 강동구 방이동 대림아파트 부녀회관. 8명의 국민학교 어린이들이 연극『없어진 미미』(신지식 원작)의 재공연을 위해 열심히 연습하고 있는 한켠에서는 7명의 어머니들이 무대장치를 새로 손질하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2학년짜리가 어쩌면 저렇게 깜찍한 연기를 할수 있을까요?』『저런, 엄마 흉내가 너무 그럴듯하군요.』
어린이들을 칭찬하는 어머니들은 자못 대견스럽다는 표정들. 마냥 즐거운 웃음을 나누며 커튼을 만들어 창문에 드리우고 그림물감으로 나뭇잎을 칠하는 등 이번 봄방학동안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또 한차례 공연할 동네어린이들을 위해 무대장치들을 정성껏 꾸몄다.
지난 1월초부터 연극연습을 시작한 이 어린이들이 불과 한달만인 지난 7일 3백여명의 이 아파트단지 주민들 앞에서 공연하는 모습을 본 이래 어린이들의 이같은 활동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한결 깊어진 것이다.
동네어린이들이 한데 어울려 연극을 하도록 이끈 장본인은 주부 송치화씨(41).
대학시절 연극반 활동을 했던 송씨는 『공부뿐 아니라 피아노치기·그림그리기 등 뭐든 혼자하는 것뿐인 요즘 어린이들에게 연극활동을 통해 풍부한 표현력과 함께 협동심·양보심을 길러주고 싶어 연극공연을 계획했다』고 했다.
지난 81∼83년에도 강남구 도곡동 개나리아파트 단지에서 어린이들에게 연극을 지도하여 『도돌이의 도깨비공부』등을 공연하면서 그 효과를 절실히 느꼈다는 것이다.
이 아파트단지로 이사온 뒤로는 작년 여름방학때 자기집에 이웃들을 청해놓고 선보인 『청개구리』가 첫 공연. 『딸애가 연극을 해보더니 한결 어른스러워지고 책임감과 시간관념도 강해졌다』며 기뻐하는 박내순씨(36). 그는 어린이들이 동네사람들 앞에서 공연하는 모습을 보고나서야 「그 좋은 일」뒷바라지에 너무 소홀했음을 느껴 다른 어머니들과 함께 폐품을 이용한 무대장치 만들기 등의 작업을 거들게 됐다며 무안해했다.
이번 연극을 통해 많은 친구들과 사귀게 된데다 「나도 할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는 염지원양(방이국교2)은 『연극 덕분에 동네사람들이 저를 알아보고 인사를 해 기분이 참 좋아요』라며 생글생글. 김태훈군(경복국교3)은 『선생님, 이번 봄방학에는 국립도서관 공연 말고도 학교친구들이랑 이 부근의 다른 아파트단지에 사는 아이들 앞에서 또 한차례 공연해요』라며 송씨를 졸랐다.
『이웃없이 살아가기 십상인 아파트촌 주민들이 어린이들의 연극공연을 계기로 꽉 닫힌 철문을 열고 나와 서로 인사를 나누게 된 것만해도 성공인 셈』이라는 송씨는 『다음번 공연때는 사물놀이 패를 청해 어린이들과 함께 동네를 한바퀴 돌아 좀더 많은 이웃들이 현관문을 열고 뛰어나오게 해보겠다』고 말했다. 또 그는 『할머니역은 진짜 동네할머니가, 아버지역은 진짜 아버지가 맡게 된다면 그야말로 성공적인 「마을극단」이 될것』이라고 기대했다. <김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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