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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에 가고 싶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61호 30면

소통 카페

지난달 28일 중견 탤런트의 고독사가 보도되었다. 세상과 단절되고 소통이 끊긴 혼자 살던 오피스텔에서 사망한 지 2주가 지나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빈번한 고독사 뉴스가 우리를 착잡하게 한다. 고독사는 통계청 조사에서도 빠져 있는 방치된 죽음이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섬』, 정현종)

소통이 부재한 시대에 대한 아픔과 지양을 찬찬히 상기한다. 물질만능의 가치에 매몰된 사회에서 외로운 인간을 감싸는 시인은 보편화한 고독을 따뜻하게 위로하는 소통이 이 시대의 간절한 소구임을 타이른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정호승)

외로움은 살아가는 인간의 숙명. 그러니 안간힘을 내서 사람들에게 산 그림자가 되어 내려가고, 종소리가 되어 울려 퍼지자고 한다. 말을 걸고 말을 나누자는 권유이다. 소통이 없다면 인간은 가벼운 존재, 무의미한 동물이 된다.

고독은 산업화가 수반하는 산물이다. 역사상 초유의 속도로 자유로움과 풍요로움을 일구어 가던 미국을 진단하면서 데이비드 리스먼(Riseman)은 1950년 ‘고독한 군중’(The Lonely Crowd)이라고 했다. 산업화로 인한 대중사회의 도래 속에서 인간은 관계의 단절과 고립의 불안에 시달리며 타인을 지향한다고 분석했다.

신천지 미국의 발전은 구체적이고 눈부셨다. 1886년 프랑스로부터 자유의 여신상을 선물로 받고, 1904년 지하철을 개통하며, 1925년 뉴욕은 런던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가 된다. 1931년 높이 381m, 102층으로 지상에서 제일 높은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의 건축을 포함하여 오늘날 맨해튼 마천루의 위용은 그때 이미 모습을 갖춘다. 하늘을 찌르는 초고층은 세상이 우러러보는 정점이 되고 주목하는 권력의 공간으로 작동한다. 경이롭고 다양한 이노베이션으로 새로운 세계 발전을 주도하던 역동적인 사회를 즐기던 사람들의 고독감이 높아진 것은 역설적이다.

대한민국도 눈부신 성장을 해왔다. 최단시간에 산업화, 경제성장, 민주화를 성취했다. 그러나 무한 경쟁과 갈등으로 개인과 사회 모두에 고독과 피로와 짜증이 무겁게 쌓였다. 여기에 고령화, 개인주의, 인간관계, 핵가족화, 스트레스, 양극화, 빈곤의 가세는 고독사와 같은 비극이 급증할 수밖에 없는 여건을 만들고 있다. 지난해 무연고 사망자는 1833명이다. 현재 정확한 통계를 낼 수 없는 고독사의 최저 추정치가 무연고 사망자 수이다. 고독한 한국인, 비정한 한국 사회로 가고 있는 것이다.

김정기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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