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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인권이 보장되는 사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온 국민과 세계의 주시 속에 출범하는 새 정부는 국민들에게 한 민주화 실천의 약속을 지켜야할 책임과 우리 사회를 참다운 민주사회로 가꾸어 나가야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
민주화 실천을 위하여 앞으로 해결해야할 과제는 너무나 많다.
그 중에서도 먼저 수행해야 할 과제는 「인간의 존엄성이 존중되고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다.
유신체제와 제5공화국을 거치는 동안 우리 사회는 권위주의통치의 소산으로 모든 것을 힘으로 해결하려는 풍조로 바뀌었고 그러다 보니 공권력에 의한 인권 침해가 예사로 일어나게 되었다.
제도적으로 헌법에 국민의 기본권이 나무랄데 없이 규정되어·있다. 특히 기본권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신체의 자유를 완벽하게 보장하기 위하여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구속·압수·수색을 받지 않고 고문을 받지 아니하며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할 권리가 있음을 명백히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이나 그 밖의 수사기관에서는 수사상의 평의 만을 내세워 법률에 아무런 근거도 없이 강제로 연행하고 진술을 강요하며, 때로는 자백을 받아내기 위하여 주먹질이나 발길질을 하는 정도를 넘어 외부와 차단된 밀실에서 물고문은 물론 이름도 생소한 여러 가지 유형의 고문과 가혹행위를 자행한 실례가 이미 세상에 드러났다.
여학생을 조사하던 경찰관이 듣기에도 민망한 「성고문」을 했다는 주장이 처음 나왔을 때 경찰관계자는 그런 일이 절대로 없었다고 극구 부인했음은 물론이요, 오히려 거꾸로 의식화된 학생들이 「성을 혁명의 도구로 이용한다」고 몰아붙였다. 검찰의 수사로도 성고문 사실은 없었던 것으로 결론이 났었다. 그러나 진실은 영원히 덮어지지 않는다.
그 후 계속된 법정투쟁의 결과 고등법원의 재정 결정문에서 성고문 사실이 부분적으로 인정되었고 급기야 대법원은 경찰의 성고문 사실을 범죄행위로 규정짓고 고문행위를 한 경찰관을 형사 소추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또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으로 고문 행위를 한 경찰관과 고위 간부가 구속된데 이어 이 사건을 축소 은폐하려던 당시의 치안본부장도 구속 기소되었다.
국민의 생명·안전을 보호하며 사회의 안녕·질서를 유지하는 것을 임무로 하고 있는 경찰이 선량하고 힘없는 백성을 잡아다가 자백을 받아 내기 위하여 모진 고문, 특히 성고문까지 자행했다면 입이 백개라도 그 행위의 정당성을 주장할 수 없다.
또한 공익의 대표자로서 범죄를 조사하여 소추하고 국가의 형벌권을 행사하는 검찰이 경찰조직 내에서 저질러진 위와 같은 범법행위를 파헤칠 때 진정 공익을 대표할 만큼 철저히 조사했다면 구태여 재정신청절차를 거쳐 법원에서 기소명령이 내려지는 수모를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앞서 인용한 두 사건이 몰고 온 여파로 그동안 추상같은 권위를 지켜오던 검찰과 힘을 과시하던 경찰은 위신이 크게 떨어지고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잃게 되었다.
그러면 왜 이와 같은 현상이 일어났는가.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검찰이나. 경찰이 정치에 밀착되어 본래의 사명과 임무를 완수하는 쪽보다 정치기상도의 변화 쪽에 치우쳐 권력의 바람이 부는 대로 움직였기 때문이다.
제5공화국이 출범한 후 경찰의 인력과 장비는 전에 비해 엄청나게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많은 경찰 인력이 도범과 폭력범 등 국민의 일상생활을 위협하는 방범치안쪽보다 대학가나 시내 중심가에 진을 치고 데모방지 등 이른바 시국치안쪽에 치중되다보니 방범망에 허점이 드러나 요즘 떼강도·노상강도 등 시민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치안상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경찰의 임무에 긍지를 가지고 국민에게 봉사하겠다는 각오로 젊음을 경찰에 던진 엘리트 초급간부들이 집단행동으로 경찰의 정치적 중립화를 외치고 나서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우리 사회는 경찰이나 검찰이 정치에 휩쓸려 그 본래의 사명과 임무를 등한히 할 때 범죄를 예방하고 범죄자를 징벌하면서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기능이 약화된다는 점을 뼈아프게 체험했다.
앞으로 이 나라를 이끌어 나갈 때 대통령은 이러한 문제점을 올바로 인식하여 다음과 같은 점에 유념해 주었으면 좋겠다.
첫째, 국민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대통령 스스로 기본권존중의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고, 기본권을 침해하는 사례가 적발되는 경우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엄벌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줬으면 한다.
둘째, 경찰은 국가의 치안 유지 기관이지 정권의 사병이 아닌 만큼 어떤 경우에도 정치적인 목적에 이용되지 않도록 해야겠다. 그러기 위해선 경찰업무를 독립된 기구에서 관장하고 정치적으로 중립화시키는 제도를 마련해야한다. 다만 경찰의 수사권 독립은 현재의 여건으로 보아 시기가 아직 이르다고 생각한다.
셋째, 검찰은 순수한 행정기관이 아니고 사법적 권능을 가진 준사법기관이므로 검찰권 행사가 정치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도록 독립된 지위를 확보해 주어야겠다. 검찰총장을 임기제로하고 검찰 업무수행은 검찰총장의 관장아래 집행하도록 하며, 범죄 수사에 있어 경찰이나 그 밖의 수사기관을 철저히 지휘·감독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검찰권의 행사에는 법무부장관은 물론 다른 정부기관의 간섭도 받지 않도록 배려해야한다.
위와 같은 제안이 실제로 제도와 운영에 반영될 때 우리 사회는 한결 명랑하고 살기 좋은 사회가 될 수 있으며 보통대통령의 이미지는 국민들의 뇌리 속에 바람직한 모습으로 새겨지리라 믿는다. 이세중<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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