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떼쓰기 흥정' 못말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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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지난달 어느 토요일 아침. 중국 상하이(上海) 근처에서 부엌 가구를 파는 장친융의 가게에 10여 명이 몰려들었다. 그는 제품에 대해 천천히 설명하려 했지만 이들은 소리쳤다.

"깎아줘요. 35% 빼줘요."

이들이 막무가내로 밀어붙이자 그는 항복하고 말았다. 가구를 30%나 할인해 주고, 기념품까지 얹어줬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3시간 후 다른 무리의 사람들이 가게를 찾았다. 이번에는 30% 이상 할인해 달라고 떼를 썼다. 장친융은 그들의 요구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요즘 중국에선 소비자들이 떼를 지어 물건을 사는 '퇀궈(購)'가 극성이라고 월스트리트 저널(WSJ)이 1일 보도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인터넷 공동구매에 해당하지만 방법이 다르다.

중국인들은 온라인 채팅을 통해 공동으로 구매할 물건을 정한 다음 오프라인 매장으로 몰려간다. 한꺼번에 몰려들어 무조건 값을 깎아달라고 우격다짐하는 식이다.

'퇀궈'의 사냥감은 중국산.외국산을 가리지 않는다. 지난해 12월 상하이 중심가의 한 자동차 전시장엔 18명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이들은 제너럴 모터스(GM)에서 나온 콤팩트카 '시보레 아베오'를 사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들은 자동차 딜러의 설명엔 아랑곳하지 않고 "깎아주세요"만 외쳤다.

이들로 전시장이 북새통을 이루는 사이 다른 차를 계약하러 온 손님들마저 자리를 떴다. 결국 6시간 승강이 끝에 딜러는 굴복했다. 8.9% 할인에 자동차 유리 세정액은 덤. 한 대 팔면 이익이 10% 남는데 거의 대부분을 깎아준 셈이다. BMW 수입업체인 상하이 보덱스모토의 매니저 자오젠은 "딜러들에게 '퇀궈'에 굴복하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졌다"고 말했다. 그는 에스티로더.카르티에.리시몽 등 명품 업체들은 출입문에 에누리가 없다는 주의문까지 내걸었다고 덧붙였다. 가격 흥정의 여지를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퇀궈'를 중개하는 대표적인 사이트는 '51퇀궈닷컴(51tuangou.com)'. 이 사이트의 창립자 장궈화는 2년 전 자신이 공동구매로 목욕제품을 싸게 샀던 경험을 바탕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현재 가입자가 38만 명에 이른다. 그는 당시 "사람들이 모였을 때 발휘되는 엄청난 힘에 충격을 받았다"며 "그러나 그런 힘이 약간 무섭기까지 하다"고 말했다.

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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