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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판박이 뉴스 Go Go! 진부함 잘근잘근 "성역이 있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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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방송기자 패러디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개그우먼 강유미가 휴대전화를 마이크 삼아 방송기자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안성식 기자]

그의 패러디 개그 때문에 방송기자들이 멘트를 바꿔야겠다며 아우성이란다. KBS-2TV '개그콘서트'의 개그우먼 강유미(23). 그는 프로그램의 간판코너 '봉숭아 학당'에서 강유미 기자로 등장, 방송뉴스의 진부한 멘트를 향해 천연덕스럽게 '풍자의 비수'를 날린다.

"운동장에 널부러져 있는 운동화 한 짝만이 당시의 처참했던 상황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두 눈에 잔뜩 힘을 주고, 방송기자보다 더 엄숙한 표정으로 읊어대는 그의 리포트에 관객들은 폭소를 터뜨린다. 그만큼 방송뉴스의 진부함에 대한 불만이 컸기 때문일까. 강씨가 철저하게 파고드는 부분도 바로 그 진부함이다. '출산드라'식 화법으로 말하자면, '이 세상에 진부한 것들은 가라'다.

"판에 박은 듯한 뉴스 말미 전문가 멘트에 대해 '당연한 말씀 감사합니다' '매번 똑같은 말씀 감사합니다''가증스러운 말씀 감사합니다'라고 토를 달면 관객들이 거의 쓰러져요. 늘 똑같은 뉴스멘트를 들어야만 하는 시청자들의 괴로움을 확 날려버린 거죠. 대신 방송사 보도국에서는 제 얘기를 많이 한대요. 기자들끼리 '뜨끔했다''더 노력해야겠다'는 말도 주고받는다고 하던데요."

개그콘서트의 인기 코너 봉숭아 학당에서 최근 선보인 합성사진(강수정 아나운서+개그맨 옥동자=강유미).

취재원에게 마이크를 들이대며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것도 방송뉴스에 대한 예리한 관찰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설정이다. 개콘 촬영장을 찾은 신입기자들이 팬이라며 인사를 건네고, 촬영을 위해 바바리 코트까지 빌려줬다고 하니 그는 아직 방송기자들의 '공공의 적'은 아닌가 보다.

그러나 얼마 전 황우석 교수 사건을 패러디한 개그를 선보였을 때는 황 교수 지지자들로부터 원성이 자자했다고 한다. "인터넷 여론조사에서 네티즌 70%가 '황 교수 사건을 개그 소재로 써도 괜찮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개그를 그냥 개그로 봐주시면 좋겠어요. 그래야 더욱 쿨한 개그를 보여드릴 수 있죠."

동료 안영미와 함께 했던 '고고 예술 속으로'코너에서부터 영화.연극.드라마.뉴스.광고 등 모든 장르의 '클리쉐'(판에 박힌 진부한 표현)를 패러디하고 있지만, 그에게도 기준은 있다.

"너무나 진부해서 몸서리쳐지는 모든 장르가 저의 패러디 소재입니다. 패러디에 성역은 없는 거죠. 미국 코미디에서는 대통령은 물론 스타 연예인들도 마음 놓고 풍자하잖아요. 하지만 특정인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인신공격성 패러디는 하지 않을 겁니다."

너무나 많은 장르를 잘근잘근 '씹은 데' 대한 미안함 때문일까. 그는 "그 장르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있기 때문에 패러디를 하는 것"이라며 살짝 눈웃음을 친다. 진부함을 패러디로 비판하는 그의 개그컨셉트상 그가 경계하는 최대의 적도 진부함 그 자체다. 한창 인기를 끌던 '고고 예술 속으로' 코너를 갑자기 접은 것도 '진부함에 빠져 식상해졌다'는 말을 들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멈춰 서는 그 순간부터 진부해진다'는 것이 그의 개그 철학이다.

"미국 애니메이션 '스폰지밥'에 나오는 만화적이고 엉뚱한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어요. 그래서 외국 시트콤.애니메이션.유머 사이트 등을 많이 보면서 '센스'를 키우고 있어요. 재미있는 부분은 항상 메모를 하고, 웃음 코드에 대해 나름대로 연구도 하고 있어요."

그 덕분에 팀 내에서 아이디어가 풍부한 개그우먼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자화자찬도 슬쩍 들이민다. 백화점 직원으로 일하던 스무 살 때 코믹액션 배우 저우싱치(周星馳)의 영화를 보고 코미디에 매력을 느껴 2002년 개그계에 입문했다는 강유미. 코미디는 물론 방송 전반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에 2004년 인덕대 방송연예과에 늦깎이 입학했다.

강씨는 독자적인 코너 없이 '봉숭아 학당'에 많은 동료와 함께 출연하는 것을 '무임승차'라고 표현했다. 언젠가 자신만의 아이디어로 혼자서 당당히 설 수 있는 코너를 갖겠다는 욕심 때문이리라. 최근 인터넷에서 엄청난 화제를 모은 합성사진(강수정 아나운서+개그맨 옥동자=강유미) 때문에 혹시 상처받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유쾌하게 답했다.

"상처받기야 했겠어요? 그래도 절반은 강수정 아나운서 닮았다는 얘긴데…. 미래의 남자친구 후보들이 한두 명씩 떨어져 나가는 소리는 들리더라고요.(웃음) 내 한 몸 망가져 시청자들이 맘껏 웃을 수 있다면 그게 바로 개그맨의 행복 아닐까요?"

글=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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