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코리안] "경기 전날엔 늘 유서 씁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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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홍창수가 2003년 6월 WBC 수퍼플라이급 타이틀매치에서 승리한 뒤 아버지 홍병윤씨의 어깨 위에서 환호하고 있다. [요코하마 AP=연합뉴스]

홍창수는 최근까지 'ONE KOREA(조국은 하나다)'라는 문구를 새겨넣고 경기에 출전했다.

지난달 27일 일본 오사카 중앙체육관. 챔피언 도쿠야마 마사요리(德山昌守.31)와 도전자 호세 나바로(미국)의 프로복싱 WBC 수퍼플라이급 타이틀전이 벌어졌다. 불꽃 튀는 난타전 못지 않게 열띤 응원도 관중석 한쪽에서 펼쳐졌다. 500여 명이 한목소리로 쩌렁쩌렁하게 장내를 울린 함성은 다름 아닌 한국어였다.

"이겨라, 이겨라, 홍창수~." 10대, 20대가 중심이 된 응원단은 하늘색 한반도 지도를 그린 통일 깃발을 힘차게 흔들었다. 이날 열렬한 응원에 힘입어 나바로를 3대 0 판정으로 꺾고 통산 아홉 번째 방어전에 성공한 챔피언 도쿠야마의 본명은 홍창수다. 할아버지가 해방 전 고향인 경남 고성을 떠나 일본에 정착한 재일동포 3세다. 국적은 북한. 2001년에는 북한으로부터 '인민체육인'과 '노력 영웅' 칭호까지 받았다.

홍창수가 일본 권투위원회 등록선수로 활동하면서 북한 국적을 유지한 건 굳은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조총련계 고교에 다니면서 샌드백을 치기 시작한 그는 1994년 프로 데뷔 때 귀화 권유를 단호히 거절했다. "조선인이란 사실은 양보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처음엔 홍창수란 본명으로 선수 등록 서류를 냈지만 계속 거부당했다. 도쿠야마란 이름으로 활동하는 건 그런 연유에서다.

시합 전날엔 반드시 유서를 쓰는 것도 남다른 그의 집념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만일 시합 중 불상사가 생기면 파이트 머니는 어떻게 나누고, 자신이 식물 상태에 빠지면 안락사할 수 있게 해달라는 내용 등을 쓰면서 각오를 다진다. 그런 의지가 빛을 발해 일본 복싱을 대표하는 스타로 우뚝 섰다. 공식 전적은 32승(8KO) 1무 3패. 1929년 이후 일본이 배출한 세계 챔피언 가운데 세 번째의 롱런 기록이다. 2년 연속 일본 권투위원회가 선정한 최우수선수(MVP)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링에선 나 자신을 위해 싸우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기면 동포들에게 용기를 준다는 생각으로 임해 왔다"고 말했다.

홍창수에겐 날렵한 왼손 잽 이외에도 또 하나의 트레이드 마크가 있다. 무명 시절부터 '완 코리아(ONE KOREA)'란 글자를 새긴 트렁크를 입고 링에 오른 것이다. 경기 포스터에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란 문구를 넣어 일본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때부턴가 그의 트렁크에서 '완 코리아'란 문구가 사라졌다. 한반도기를 들고 입장하던 모습도 보기 힘들어졌다. 오랫동안 그를 취재해 온 한 기자는 "북한이 일으킨 납치 문제로 일본인의 반북 감정이 고조되면서 홍창수 선수도 많은 갈등을 겪은 것 같다"고 말했다.

31세란 나이도 그에게 부담으로 다가온다. 지난달 27일 경기가 끝난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는 "어떤 모습이 될지는 모르지만 제2의 인생을 살면서도 복싱에서 익힌 근성은 계속 가지고 있겠다"고 말했다. '정상의 자리에 있을 때 스스로 내려와 명예로운 은퇴를 하겠다'는 속내를 내비친 말로 받아들여진다.

도쿄=예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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