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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bs] 파랑새여, 잠깐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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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연구개발 분야를 원했지만 생산설비 관리 파트에 배치된 것이 불만이었다. 그는 석사 학위 이상 소지자들이 연구직에서 많이 일하는 것을 보고 석사 과정에 다니려 했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야근이 잦아 공부할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 더구나 공장 주변은 배울 곳이 마땅치 않았다. 정씨는 현재 대학원에 진학해 산.학 협력 장학생 자리를 찾고 있다. 이 자리는 교육비를 기업이 대고, 그 기업이 요구하는 전공을 공부하는 과정이다.

이와 비슷한 조기퇴직 사례는 적지 않다.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 영업직에 취업했던 권모(28)씨는 반년 만에 회사를 나왔다. 자기계발의 비전이 없다고 판단했다. 밤 10시가 넘어 퇴근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권씨는 "마흔 살이 넘은 간부 선배들이 판매 할당량을 맞추느라 밤 늦은 시간까지 동분서주하는 모습을 보고 직종에 회의를 느꼈다"고 말했다. 이 둘과 같은 사람을 '파랑새 증후군'을 가진 직장인이라고 말한다.

파랑새 증후군은 현재의 직업에 만족하지 못하는 직장인들의 심리를 일컫는 것으로 벨기에의 극작가이자 시인 마테를링크의 동화극 '파랑새(L'Oiseau Bleu)'에서 유래한 말이다.

국내기업들이 앞다퉈 우수 인력 확보에 나서고 있지만 이처럼 직장에 정을 붙이지 못하는 직장인들도 적지 않다. 최근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대기업 62개사와 중소기업 300개사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신입사원 10명 중 3명 가량은 1년도 못 채우고 퇴직했다. 1년 이내에 퇴사한 비율은 중소기업이 30.8%, 대기업이 22.8%였다. 어떻게 하면 어렵게 구한 직장에서 오래 둥지를 틀 수 있을까.

퇴직자 정씨와 함께 직접 경력 상담 전문가를 찾았다. 인크루트 신상훈 전략사업 국장은 "정씨의 퇴사 결정은 잘못"이라며 "학위는 물론 충분한 현장 경험을 쌓아야 연구직으로 가기가 쉽다"고 말했다. 일반적인 채용설명에 의존하기보다 먼저 입사한 선배에게서 직무 정보를 얻기 위해 노력했다면 섣부른 판단을 안 했을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직장 생활에 대한 자기설계가 부족했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날 상담과 함께 진행된 모의 면접에서 정씨는'꿈이 무엇이냐'는 추상적인 질문에 "궁극적으로 프리랜서가 되고 싶다"고 답했다. 그러나 신 국장은 자신의 비전 역시 회사와 공존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수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 국장은 또 "구직자 대부분은 회사의 외형과 명성을 중시해 일의 성격을 간과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해당 업무의 성격을 파악하고 적성에 맞는 일을 찾으려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고 충고했다.

물론 기업에도 일부 책임은 있다. 최근 '인재가 선망하는 기업의 조건'이라는 보고서를 낸 LG경제연구원의 노용진 연구위원은 "직원들의 직무 만족도는 생산성과 직결되는 만큼 기업들은 인재를 붙잡기 위해 좀 더 사려 깊은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며 "자기계발 욕구가 강한 X세대(25~35세)에게 무조건 회사를 위해 희생하라고 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미국 경제전문 월간지인 포춘 1월호 보도에 따르면 미국에서 '가장 일하고 싶은 기업 (Best Employer)'100위에 드는 회사들의 평균 주가 상승률은 'S&P500' 보다 훨씬 높았다. S&P500은 국제적인 신용평가기관인 S&P가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한 기업 중 선정한 우량기업 500개를 말한다.

포춘지는 일하고 싶은 기업의 공통점으로 '성과 공유 체계' '팀워크와 좋은 인간 관계'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청취하려는 최고경영자의 노력' 등을 꼽았다. 스타벅스는 매장 직원이 알아서 할 수 있는 의사결정의 폭을 크게 넓혀 구직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섬유제품 제조 업체 고어(W.L.Gore)는 수직적 조직체계를 벗어 던졌다. 직위를 없애고 팀 리더는 돌아가면서 맡게 했다.

국내 기업들도 인재 이탈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인크루트 설문조사에서 응답기업(362개)의 과반수(56.4%)는 신입사원 이탈 예방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 실시 후 퇴사율이 줄었다는 기업이 61.4%나 됐다. 프로그램 '실시 기업'의 평균 퇴사율은 26.3%인 데 반해, '하지 않는 기업'은 32.2%를 기록해 5.8%포인트의 차이를 보였다. 기업 교육담당자들은 '멘토링'(후견인.63.8%)이 이탈방지에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

경험이 풍부한 동료가 신입사원과 얼굴을 맞대 상담하는 과정에서 회사에 대한 믿음이 생기고 새로운 일에 대한 불안도 덜 수 있다고 여겼다. 현재 이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하지 않고 있다고 대답한 204개 기업 중 대부분(91.7%, 187개사)이"신입사원 이탈 방지책을 강구 중"이라고 밝혔다.

임장혁 기자

퇴직한 사연 들어보니

상사·동료와 마찰 가장 많고
비전 없고 연봉 낮아서가 다음

중앙일보와 인크루트는 공동으로 지난달 7~14일 1년 이내 퇴사 경험이 있는 20~30대에게 사표를 낸 이유를 물었다.

인크루트에 신상정보를 올린 75만8054명 중 1년 미만 경력 보유자 9만736명을 추려내 e-메일로 설문조사를 했다. 이중 1399명(남자 912명, 여자 427명)이 답했다. 응답자가 퇴직한 회사는 소기업(818명)이 가장 많았다. 그 다음이 중기업(322명), 대기업(109명)순이었다.

공기업과 벤처기업에 다녔던 사람은 모두 90명이다. 학력별로는 대졸(606명),전문대졸(406명), 고졸(239명), 대학원졸(88명)의 차례였다. 복수응답이 허용된 이 조사에서 퇴사자들은 '인간관계에 대한 불만'(26.3%)을 퇴직의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인간관계에 대한 불만은 '상사나 동료와의 마찰'(13.9%)과 '일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다'(12.4%) 등의 이유로 빚어졌다. '회사생활에 비전이 없어서'(18.4%, 561건)와 '연봉이 낮아서'(16.1%, 491건)가 퇴직 사유에서 각각 2위와 3위에 올랐다. '야근이 잦아서'라는 답은 9%(274건)에 그쳤다.

퇴사 이유는 기업의 규모에 따라 크게 달랐다. 대기업 퇴사자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아서'라는 응답이(18%, 211건 중 38건)이 가장 많았던 반면, 중기업을 그만둔 사람들은 '낮은 연봉'(16.9%, 747건 중 126건)을 가장 큰 이유로 들었다. 소기업이나 벤처기업 퇴사자들은 '회사에 비전이 없어서'라는 답이 가장 많았다.

인크루트 경력 상담전문가 서미영씨는 "설문조사 결과 20~30대는 편한 일보다는 열심히 일할 수 있는 분위기와 적절한 보상이 이뤄지는 직무를 선호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며 "구직단계에서는 연봉이나 회사의 평판 등을 기준으로 회사를 선택하지만 입사 후에는 인간관계와 개인의 적성에 대해 고민하는 경향이 짙었다"고 말했다.

임장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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