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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언제 김정은과 협상할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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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김정은의 목표는 확고하다. 핵과 경제를 동시에 움켜쥐고 장기 독재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에서 보여 준 그의 속내는 복잡하다.

북한과 대화는 너무 서두르거나 #지나치게 늦지도 말아야 한다 #북한 광물 1년 이상 수출 안 되고 #장마당 거래가 절반 이상 줄고 #당국이 민간 보유 외화 수탈하면 #그때가 협상 시작의 적기다

‘태평양 상공에서의 수소탄 실험’이나 ‘괌 인근으로의 미사일 발사’라는 고강도 도발 대신 그는 ICBM의 사거리를 늘린 정도의 기술적 도발을 택했다. 그리고 핵 무력 완성을 서둘러 선언함으로써 미국과 협상하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이는 한편으로 제재가 북한 경제를 옥죄기 시작했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고강도 도발이 미국의 군사공격을 촉발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협상의 기회가 오면 이를 성공시켜 비핵화로 가는 길을 열고 전쟁을 막아야 한다. 그러나 만약 현시점에서 협상이 열린다면 성공보다 결렬 가능성이 훨씬 크다. 북한의 호가(呼價)와 미국이 지불하려고 하는 가격 차이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 북한은 협상 조건으로 미국의 적대시 정책 포기와 핵보유국 인정을 요구하고 있다. 물론 미국이 이 요구를 들어줄 가능성은 없다. 아마 미국 주류는 여전히 비핵화와 북·미 수교 정도를 등가(等價) 교환으로 보고 있을 것이다.

북한과의 대화는 필요하나 섣부른 협상은 바람직하지 않다. 성공 가능성이 작을뿐더러 결렬되면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중국은 협상 분위기를 틈타 제재를 완화할 수 있고 협상이 깨지면 그 책임을 미국에 돌리면서 제재를 포기할 가능성이 있다. 제재와 협상 모두 효과가 없음을 확인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남을 것이다. 즉 외부로 반출되지 않는 한 북핵과 미사일을 그냥 둘 것인가, 아니면 군사적 옵션을 쓸 것인가다.

김병연칼럼

김병연칼럼

미국이 전자를 택할 경우 북한은 핵과 미사일을 개발해 아무것도 얻지 못한 셈이 된다. 따라서 도발을 계속할 것이다. 미국 내 여론은 들끓게 되고 결국 군사적 옵션이 미국의 최종 선택지가 될 가능성이 커진다.

북한과의 협상이 너무 늦게 시작돼서도 안 된다. 경제제재로 북한을 굴복시키기는 어렵다. 북한의 식량 생산이 1997년의 350만t에서 현재 500만t 정도로 증가했기 때문에 고난의 행군 시기만큼 경제가 어려워지지는 않을 것이다. 더욱이 제재 기간이 길어질수록 중국의 제재 강도는 약해지는 반면 북한의 회피 방법은 진화할 것이다. 자신감을 갖게 된 북한은 핵 동결 혹은 비핵화의 대가로 주한미군 철수나 한·미 동맹 폐기를 요구할 수 있다. 만약 북한이 선제공격을 받더라도 남아 있는 핵무기로 상대를 타격할 수 있는 2차 핵 보복 능력까지 갖추게 될 경우 미국은 할 수 없이 북한의 요구를 수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과의 협상은 최적의 시기에 이뤄져야 바람직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핵 개발을 계속한다면 북한 경제가 무너지는 구도를 만들어야 최적의 시기가 올 수 있다. 최근 북한의 ICBM 도발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로 원유와 정제유 공급을 중단시켜야 하는 것도 이를 앞당기기 위해서다. 중국이 끝내 반대해 중단이 아니라 축소로 결정된다면 그 대신 해외 파견 북한 근로자를 당장 돌려보내는 안을 수용하도록 중국과 러시아를 압박해야 한다.

그렇다면 협상의 최적 시기는 언제일까. 첫째, 1년 이상 북한 광물이 거의 수출되지 않았을 때다. 광물 수출이 막히면 북한 경제성장률은 2.5% 이상 하락할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이는 98년 이래 가장 낮은 성장률이다. 또한 북한의 국제수지는 90년 이래 가장 큰 규모의 적자를 보여 정권의 돈줄이 말라 가게 될 것이다.

둘째, 북한 시장의 거래 규모가 절반 이상 줄어들 때다. 시장은 주민뿐만 아니라 거기서 나오는 뇌물로 먹고사는 관료의 생명줄이다. 이들의 소득 하락은 김정은 정권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를 위해 경제적 고통의 원인이 김정은의 핵과 미사일 개발에 있음을 이들에게 알리는 정보 유입이 필수적이다.

셋째, 부족한 외화 수입을 메우기 위해 국가기관이 민간 보유 외화를 수탈할 때다. 그 결과 김정은과 주민 사이의 갈등이 고조될 수 있다. 만약 북한 정권이 국유 자산을 민간에 매각해 외화를 빨아들인다면 이는 북한의 체제 이행을 촉진할 수 있기 때문에 긍정적이다.

우리 정부는 협상만 하면 모든 게 잘될 것이라는 희망적 사고를 버려야 한다. 오히려 결렬된 협상은 전쟁으로 가는 문을 열어 줄 수 있다. 평화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냉철하고 또 냉철해야 한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