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가 충분히 토론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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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임금 협상 철이 임박해 온다. 3월에 접어들면 기업의 노사쌍방은 임금협상을 개시하게 된다.
예년의 임금결정과정을 보면 정부에서 임금가이드라인을 내놓고 이 가이드라인을 골격으로 노사협상을 거쳐 타결하는 형식을 취했었다. 노사협상이라 지만 실질적으로는 정부측의 임금지침이나 사용자측이 제시하는 선에서 대체로 결정되었었다.
올해는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민주화로 정치·사회환경이 예년과 같지 않고 근로자의 파워가 강해진데다가 지난 대통령 선거 때 쏟아 논 공약으로 근로자들의 기대가 부풀어 있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의 극렬했던 노사분규의 잔영이 아직도 가시지 않았다.
정부당국에서는 임금가이드라인을 철폐키로 하여 임금문제의 자율해결의 원칙을 천명 했 다. 임금문제는 노사쌍방의 자율적 합의로만 해결을 기대 할 수밖에 없는 새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노사쌍방의 협상카드가 제시되었다. 새해 들어 일찌감치 근로자 측인 한국노총은 올해 적정 임금인상률을 평균 29·3%로 제시했다.
경영자 측의 모임인 한국 경총은 7·5∼8·5%선을 내놓았다. 양측카드 내용에 큰 격차가 있어 임금협상의 진통이 예상된다. 어떻게 양측의 제시 선을 여과하고 절충하여 원만한 타협 선을 찾느냐가 큰 문제다.
경총은 올해 예상 GNP상승률 8%에 물가상승률 2∼3%와 취업자증가율 2·5%로 감안하여7·5∼8·5%의 임금인상을 주장했다. 노총은 최저생계비 상승률 12·5%, 87년 전 산업노동생산성 증가율 12· 3%, 87∼88년 소비자 물가상승률 4·5%를 합쳐 29.3%를 제시했다. 어느 측 주장이 더 합리적인가에 대한 의견은 일단 유보하고자 한다 .근로자 측에서 보면 다다익선일 테고 사용자측에서 보면 나름대로의 논리와 어려운 사정이 있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협상결과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협상에 임하는 기본자세와 협상과정도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첫째 올해는 정식협상 테이블에 앉기 전 사전 예비적 대화를 충분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율해결에 기대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터놓고 쌍방의 어려운 입장에 대해 대화를 나눔으로써 상호이해의 터전을 마련할수록 그만큼 협상이 수월하게 될 것이다. 그러자면 3월까지는 시간이 많은 것도 아니다.
둘째, 노사 어느 측도 역지사지의 자세가 요망된다. 기업은 노사쌍방의 공존공영의 장이다.
한 발짝씩 물러서 서로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게되면 임금협상이 보다 순탄할 것으로 믿어진다. 근로자 측에서 보면 욕구 분출이 예상되고 기업 측에는 대내외 경제여건에서 어려운 상황이다.
세 째, 올해 임금협상이 지난해 노사분규의 연장선상으로 번져서는 안 된다.「선 행운·후 협상」은 지난해 쓴 경험으로 끝내야 되고 법의테두리를 벗어난 과격 쟁의는 산업평화를 해쳐 어느 누구에도 유익하지 않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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