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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용 스타' 이병규를 믿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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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딱"하는 소리와 함께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았다. 5-5 동점, 9회 말 2사 2루에서 터진 안타였다. '끝내기 안타'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 생각보다 더 빠르게 일본의 2루 주자 헤이마가 3루를 돌고 있었다. 헤이마가 홈을 밟는다면, 한국의 올림픽 메달 꿈은 무너진다. 2000년 9월 23일 호주. 시드니올림픽 야구 6차전의 장면이었다.

그 장면에서 한국 우익수의 기적 같은 홈 송구가 이어졌다. 이병규였다. 원바운드로 정확하게 포수 홍성흔의 가슴팍에 안기는, 그래서 홈으로 뛰어들던 헤이마를 깨끗하게 태그아웃시키는, 한편의 그림이었다. 그 송구 덕분에 한숨을 돌렸고, 한국은 연장에서 7-6으로 이겨 메달의 꿈을 이어갈 수 있었다.

시드니 올림픽에서 '한국의 동메달'하면 누구나 3, 4위전 완투승의 주인공 구대성을 떠올린다. 그러나 이병규가 아니었다면 3, 4위전은 아예 이뤄지지도 못했다. 이병규는 올림픽 동메달의 숨은 주역이다.

시드니 올림픽뿐만이 아니다.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금메달)을 시작으로 이병규가 프로 선수로 출전한 5개 국제대회의 성적을 보면 그가 '국제용'이라는 데 고개가 끄덕여진다. 아니, 입이 벌어진다. ^98년 방콕아시안게임 0.560 ^99년 서울아시아선수권 0.500 ^2000년 시드니올림픽 0.351 ^2001년 대만월드컵 0.395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0.364 등 프로 올스타가 출전한 국제대회에서 통산 타율이 무려 0.455(132타수 60안타)다. 한국이 대만에 역전패의 치욕을 당한 2003년 삿포로 아시아선수권 때 무릎 수술 때문에 참가하지 못한 이병규가 있었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빛나는 활약을 펼치면서도 이병규는 그만큼의 스포트라이트는 받지 못했다고 본다. 한국을 대표하는 타자로 이승엽.김동주가 있었고, 이종범.박재홍이 있었다. 홈런 타자가 아니라는 스타일의 차이도 있지만 이병규 특유의 셈 없고 거침없는 개성이 한몫했다. 97년 데뷔하면서 시범경기 때 "선배들이 더 성의 있게 던져줬으면 좋겠다"고 당돌하게 말했고, 98년 플레이오프에서 삼성 강동우가 다쳤을 때 그릇된 몸동작으로 비아냥거린 것도 그의 이미지에 상처를 냈다. 이처럼 지나치게 거리낌없어 때론 건방져 보이는 게 이병규의 개성이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도 이병규는 여전하다. 일본? "너 이치로야? 나 이병규야"라는 식이다. 이치로가 "상대가 30년 동안…"이라고 했을 때 이병규는 눈 하나 꿈쩍 안 했다. "나는 일본에 진 적이 없고, 이번에도 이길 수 있다. 지면 자존심이 무너져 용납이 안 된다"고 말했다. 스타일 그대로다. 이병규 특유의 자신감. 그 개성은 분명 그를 지탱해 주는 힘이다. 그의 매력이기도 하다.

도쿄=이태일 야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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