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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재산 공개 허와 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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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일부 공직자들은 재산이 어떻게 형성됐는지는 따지지 않고 돈의 많고 적음만으로 곱지 않은 시선을 받게 된다며 '마녀사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재산 공개의 취지는 권력이나 지위를 이용해 편법이나 불법적으로 축재하는 것을 막겠다는 게 핵심이다. 하지만 공직자들이 피부로 느끼는 현실은 크게 다르다.

이번에 재산을 신고한 정부 부처의 한 공무원은 "일단 돈이 많으면 무조건 백안시하는 게 사회 분위기다"라며 "재산이 늘어나면 의혹의 눈길을 받아야 하는 것도 견디기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1위는 누구 얼마, 꼴찌는 누구 얼마'부터 '누구는 지난해 얼마를 벌었네'까지 리스트가 만들어진다. 국민은 리스트를 보며 눈살을 찌푸리거나 고개를 끄덕인다.

행정부의 경우 뚜껑을 열고 보니 10명 중 2명꼴로 평균 1억원 이상 재산이 지난해보다 늘었다. 정보통신부 진대제 장관은 40억원이 불어 공무원 1위에 랭크됐다. 이는 주식백지신탁제 때문에 삼성전자.삼성전기.제일모직 등의 보유 주식을 팔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 주식 가격이 지난해 신고 때는 44억7393만원이었지만, 지난해 주가가 크게 오르는 바람에 재산도 덩달아 불어난 것이다.

문제는 이런 사연들을 설명할 수단이나 기회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재산 가격 신고의 잣대도 뚜렷하지 않다. 실제로 이번에도 동일한 평수의 같은 아파트 가격이 2억8000만원과 4억여원으로 1억2000만원이나 다르게 신고되는 일도 벌어졌다. 부동산은 보유 당시 한 번만 신고하면 사거나 팔지 않는 한 다시 신고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현행 공직자윤리법은 직무상 부정 축재만을 심사 대상으로 하고 직무와 무관한 재산 증식에 대해서는 문제 삼지 않는다.

우리의 재산 공개 제도는 외국보다 엄격하다. 본인.배우자 이외에 직계존비속에 대한 공개 의무를 두고 있는 나라는 외국에도 드물다. 정부는 앞으로 직무 외에 부동산 투기, 탈세, 위장 전입 등의 수단으로 재산을 늘린 사람들도 심사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재산 공개가 공직사회를 투명하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자기 재산을 떳떳하게 지키고 불리는 것까지 눈치 보게 만드는 사회는 투명성이나 건강함과는 거리가 멀다.

조강수 사회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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