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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비정규직 법안,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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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번 법안은 합리적 사유 없이 비정규직을 차별하지 못하는 '차별 금지 원칙'이 기본 정신이다. 비정규직이 비로소 사회 안전망 속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법안의 구체적인 내용을 놓고 노동계와 경영계의 입장과 해석은 다를 수는 있다. 그러나 오랫동안 사각지대에 놓인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은 더 이상 방치하기 어렵다. 특히 비정규직 문제에 상당부분 책임이 있는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반발은 납득하기 힘들다. 환노위 최종안은 계약기간이나 기간 경과 후 고용보장에서 노동계 주장을 대폭 수용하지 않았는가.

물론 이번 법안은 곳곳에 불씨를 안고 있다. 비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한 '2년 뒤 고용보장'은 '2년차 해고'를 양산하는 수단으로 둔갑할 수 있다. 기업들이 이를 빌미로 비정규직을 합법적으로 남발할 소지도 다분하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기 위한 파견근로제도는 노동계의 반발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차별대우 금지'의 기준 역시 모호하기 짝이 없다. 분쟁이 빚어질 때마다 구체적인 기준을 놓고 사사건건 법원의 판단을 받아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부터 시작이다. 현실에 맞게 시행령을 준비하고 이번 법안이 조기에 정착되도록 머리를 맞대야 한다. 갓 태어난 법안이 미흡하다며 총파업을 들먹일 때가 아니다. 이번 법안은 비정규직 근로조건 개선을 통해 노동 의욕 제고와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자는 것이 취지다. 자칫 노사 대립의 빌미가 돼 경제성장이 뒷걸음치면 비정규직 권익마저 악화되는 부작용을 경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