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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틴 경제] 로보어드바이저가 뭔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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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Q.요즘 신문을 읽다 보면 ‘로보어드바이저’라는 용어가 많이 나옵니다. 세계적인 투자자가 투자했다는 얘기도 있는데 얼마나 유망한 경제 분야인가요?

데이터 기반으로 객관적 판단 #개인 맞춤형 포트폴리오 구성 #수수료 싸 자산관리 대중화 기여 #수익률 기대만 못해 신중론도

인공지능이 PB처럼 자산 관리해주죠"

A. “쉽게 말해 똑똑한 로봇이 내 자산 관리도 해준다는 거죠.” 로봇이라고 하면 흔히 공상과학 영화에 나오는 멋진 경찰 로봇 ‘로보캅’이나 변신 로봇 ‘트랜스포머’를 떠올리기 쉬운데요. 이처럼 얼굴과 팔다리 등 형체를 갖춘 로봇은 아니지만 인공지능(AI)으로 데이터 분석을 하는 무형의 로봇이 온라인 자산 관리를 해주는 서비스가 바로 ‘로보어드바이저(robo-advisor)’입니다. 용어 자체가 로봇과 영어 단어로 투자 전문가를 뜻하는 어드바이저의 합성어랍니다.

동네 은행에 가면 보통 창구가 있고, 은행원들이 업무를 보지요. 조금 큰 지점에 가면 더 안쪽에선 별도로 마련된 공간에서 프라이빗 뱅커(PB)라고 하는 직원들이 친절한 미소로 손님을 응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고액 자산가의 종합적인 자산 관리를 도와주는 직원들인데요. 이렇게 직접 PB를 만나 상담하지 않고도 로보어드바이저를 통하면 스마트폰과 PC를 통해 언제 어디서나 보유한 자산의 포트폴리오 관리를 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그래픽=박춘환, 김회용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김회용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AI가 고도의 알고리즘과 빅데이터 분석으로 마치 인간 PB처럼 알아서 척척 자산 배분 전략을 마련해주기 때문이지요. 로보어드바이저를 이용할 고객은 우선 직접 자신의 자산 정보를 입력합니다. 전체 자산 중 주식이면 종목별로 주당 ○○원의 주식 ○○주, 부동산은 ○억원짜리 ○채, 적금은 어느 정도. 이런 식으로 말이죠. 그러면 AI가 개인별 위험 감수 성향을 고려해 자산 배분 전략을 짜고, 그에 맞게 포트폴리오를 구성해줍니다.

장점이 뭘까요. 우선 철저하게 데이터를 기반으로 객관적인 판단을 해준다는 겁니다. 인간의 판단과 개입은 배제하는 걸 원칙으로 삼습니다. 이 때문에 로보어드바이저를 신뢰하는 사람들은 주가가 갑자기 악재를 만나 곤두박질치거나 환율이 출렁거리는 등의 돌발 변수에 유리하다고 말합니다. 솜씨가 좋기로 정평이 난 PB일수록 자기 경험을 기반으로 주관적인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우려되는 일부 위험성을 보완해준다는 거죠. 물론 일반 PB처럼 개인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기본적 특징 안에서 말입니다. 데이터의 실시간 분석이 끝나면, AI가 투자자별 투자 성향과 목적에 맞게 포트폴리오 균형을 다시 잡습니다.

이처럼 자동화로 서비스가 되면 좋은 점이 또 하나 생기는데요. 고객 입장에선 만만찮은 지출이 되는 ‘수수료’의 절감입니다. PB 등 전문 인력의 인건비를 아끼면서 로보어드바이저를 제공하는 금융사 입장에서도 수수료를 낮출 여력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차이날까요. 국내외 주요 금융사 자문 서비스의 평균 수수료가 연간 1% 안팎인데, 로보어드바이저 자문 서비스를 이용할 경우 수수료는 업체별로 조금씩 다르지만 0.2~0.5% 정도입니다.

별 차이가 안 나는 것 같다고요? 내 전체 운용 자산의 n%라면 감이 오시나요. 5억원 운용을 가정할 때 1%면 500만원, 0.3%면 150만원. 단순 계산상 로보어드바이저를 안 쓰면 1년에 350만원씩을 더 지출하게 됩니다. 자산이 5억원이 아닌 50억원, 500억원인 고객이면 차이는 한층 크게 다가오겠지요. 500억원을 운용하는 고액 자산가라면 연간 3억5000만원 덜 쓰면서 로보어드바이저의 힘을 믿어볼 수 있을 테니까요.

거꾸로, 수수료 부담에 PB 서비스 이용은 엄두를 못 내던 소액의 자산 보유자들에게도 새 기회가 마련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특히 그동안의 PB 서비스에선 투자금액이 최소 얼마 이상은 돼야 이용이 가능하다는 제약이 있어 고액 자산가와 기관투자자 등 이른바 상위 1% 고객만 이를 이용해 왔는데요. 로보어드바이저가 등장하면서는 더 많은 사람이 자산 관리 서비스를 받는 ‘자산 관리의 대중화’ 시대가 활짝 열린 셈이 됐습니다.

이런 장점들로 인해 로보어드바이저가 주목받으면서, 또 AI의 성능 등 제반 기술이 그만큼 발전하면서 로보어드바이저 시장도 매년 급성장하고 있습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2014년 140억 달러(약 15조원)에 불과했던 세계 로보어드바이저 시장 규모는 2019년 2550억 달러(약 277조원)로 5년 만에 18배로 성장할 전망입니다. 아직은 태동 단계인 국내 시장 규모도 2021년 6조원에서 2025년 46조원으로 점점 커질 것으로 예측됩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세계에서 로보어드바이저 시장이 가장 활성화한 나라는 미국으로, 올해 5월 기준 1825억 달러 규모나 됐습니다. 그다음이 중국(271억 달러), 영국(66억 달러), 일본(24억 달러), 캐나다(19억 달러) 순이었네요. 미국에선 뱅가드그룹이나 찰스슈왑 같은 세계적인 펀드 회사들이 2015년무렵부터 로보어드바이저를 도입해 자산 운용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결제 서비스 기업 페이팔도 최근 아콘그로우라는 로보어드바이저 업체와 손잡고 이용자들에게 새 투자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한국도 시장 규모는 아직 훨씬 못 미치지만 주요 금융사와 AI 스타트업들을 중심으로 로보어드바이저 분야 생태계가 갖춰지고 있는 단계인데요. 와디즈라는 스타트업은 8개 증권사와 제휴해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고 합니다. 파운트라는 스타트업도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데요.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세계적 투자자 짐 로저스 미국 로저스홀딩스 회장이 이 회사에 투자하고 방한해 직접 사무실을 찾을 만큼 신뢰감을 보여서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살펴봤듯 로보어드바이저는 그 성장성과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게 사실입니다만, 장밋빛 미래만이 예상되는 건 아닙니다. 현 시점에서, 그리고 가까운 미래까지 AI가 인간보다 더 똑똑하게 자산 관리를 해줄 수 있는지에 대해선 검증이 더 필요하다는 신중론도 계속 제기되고 있어서입니다. 대표적인 게 수익률에 대한 회의론이겠죠. 국내 펀드 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지난달 20일 기준 순자산 10억원 이상 로보어드바이저 펀드 17개의 최근 3개월 평균 수익률은 1.28%에 불과해 국내 주식형 펀드(8.25%), 일반 주식 펀드(5.51%)보다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인간이 관리해주느니만 못했다는 겁니다.

이에 대해 익명을 원한 관련 업계 스타트업 대표는 “로보어드바이저는 기본적으로 고위험·고수익보다는 안정적이면서도 일정 수준의 수익을 꾸준히 내는 중위험·중수익을 추구한다”고 말했습니다. 업계는 또 로보어드바이저 기술이 아직 충분히 완성되지 못한 ‘성장기’인 점, 특히 한국의 경우 미국보다 4~5년 늦게 시장에 진입한 점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적어도 2021년 전후로는 기업이 투자금을 원활히 회수할 수 있을 만큼 안정된 기술력이 갖춰질 것이라고도 말합니다. 그때쯤이면 보다 높은 수익률을 기대해도 좋다는 얘기겠지요. 관심을 갖고 계속 지켜본다면 또 어떤 일들이 눈 앞에 펼쳐질지 흥미롭습니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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