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통령선거 언론이 차치고 포친다-【한남규 특파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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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미국대통령선거는 유권자가 치르는게 아니라 보도매체가 치르는 느낌이다.
8일로 박두한 아이오와주의 코커스(당 간부회의)를 위해 수천명의 보도진이 주도 디모인으로 몰려들고 있다. 호텔들은 이미 1년전에 예약이 끝났고 렌트카 얻기도 불가능하다. 대부분의 정당집회마다 보도진이 당원보다 훨씬 많다.
각주는 금년 여름 공화·민주양당의 후보지명 전당대회에 보낼 대의원선출 방식으로 두가지중 하나를 택한다. 당 간부모임인 코커스를 통하거나 전 당원이 참여하는 예비선거를 실시한다. 코커스로서는 8일의 아이오와주가, 예비선거로서는 16일의 뉴햄프셔주가 처음이다. 따라서 미국은 내주를 계기로 본격적인 후보지명전의 열풍에 휩싸이게 된다.
그러나 이 두 주에서 선출되는 대의원숫자는 매우 미미하다. 총 4천1백60명의 대의원을 뽑을 민주당은 아이오와주에서 58명, 뉴햄프셔주에서 22명을 선출하며 대의원 총 숫자가 2천2백77명인 공화당의 경우도 각각 37명과 22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초반 무대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숫자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일종의 계기랄까. 모멘트가 형성되는 행사이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대세가 어느쪽으로 흐르고 있는지를 측정하는 행사인 셈이다.
흔히 미선거제도에 있어서 이같은 지명전의 과정은 「탈락 컨테스트」로 불린다.
예비선거 등을 거치면서 열세의 경쟁자에겐 비정할이만큼 명백한 패자의 딱지가 붙여지기 때문이다.
특정 예비선거나 코커스에서의 패배자들은 한두번은 변명을 하게 마련이다. 『이곳은 우리 동네가 아니라서 처음부터 운동을 하지 않았다』는 등 궁색한 해명을 하지만 지지도가 낮은데 대한 객관적인 평가는 냉엄하며 이런 유형의 경쟁자는 결국엔 탈락하고 만다.
이러한 과정에서 여론형성에 활발한 촉매작용을 하는게 바로 미디어(언론매체)들이다.
미 미디어의 생리중 하나가 승자에 대한 명백한 애정표시다.
그런데 승자는 반드시 최다득표자만이 아니다. 때로는 대의원 숫자가 적은 후보경쟁자를 미디어들은 승리자로 만들기도 한다. 선전에 대한 평가이며 당선가능성의 발굴작업이다.
미미디어의 초반보도, 다시 말해 초반평가작업이 얼마나 활발하고 철저한지를 증명해 주는 실례다.
미미디어의 이같은 작업은 코커스나 예비선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여론조사는 특히 대통령선거전 같은 정치보도에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초반 예비선거를 앞두고 각TV·신문은 서로 앞을 다투어 여론조사를 실시, 민심의 향배를 전달한다. 누가 앞서고있고 누가 처지는지 마치 경마중계를 방불케 한다. 주로 언론에 의해 가열되는 이같은 선거레이스를 「천시간의 달리기」로 비유하기도 한다. 정초부터 아이오와주 행사까지가 대략 1천시간이기 때문이다.
2년이 됐건, 누구 말대로 『평생 대통령철학을 공부』했건 이 초반경주의 결과는 냉엄하다. 아이오와주 코커스에서 대개 3파전정도로 정리되고 뉴햄프셔주 예비선거에서 2파전으로 더욱 압축된다.
이같은 과정이 몸에 밴 미국미디어들은 지난번 한국대통령선거과정에 대해 끊임없는 의문들을 제기했다. 어째서 여론조사가 금지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결과론이지만 만약 여론조사를 실시, 미국과 같이 언론의 여과과정을 통해 민심이 더욱 강력히 연줄될 수 있었다면 두 후보중 한사람이 탈락되고 이른바 야권단일화가 이루어지지 않았겠느냐는 시각들이다.
결국 미국의 대통령선거에 관한한 후보자들의 위치가 각주정당대표나 대의원보다 언론집단에 의해 결정적으로 영향받는 형국이라 할수 있다.
현재 미국에는 상업 텔리비전방송국이 9백개, 공공방송국이 3백개 등 총1천2백개에 이른다. 신문도 일간이 1천6백80개, 주간 또는 격주간 신문이 7천3백50개나 된다. 잡지만도 1만1천개이며 타임·뉴스위크·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 등 3대 주간지 발행부수가 9백50만부에 이른다.
미국의 미디어는 가히 공룡처럼 커있으며 그만큼 국민의 의식을 대변한다. 이 거대한 매체 앞에서 유능한 후보는 유권자가 직면한 문제들에 대한 최선의 해답을 제시, 지지를 이끌어내고 그렇지 못한 후보는 탈락의 비운을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미대통령선거의 승리자는 국민들로부터 추앙을 받음에 그 누구도 다툴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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