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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직접 찾아가 고개숙인 조국…교황 ‘낙태’ 발언 인용 실수도 사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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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29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천주교 수원교구를 찾아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위원장 이용훈 주교(수원교구장)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있다. [천주교 수원교구 제공 = 연합뉴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29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천주교 수원교구를 찾아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위원장 이용훈 주교(수원교구장)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있다. [천주교 수원교구 제공 = 연합뉴스]

조국 수석, 천주교 신도회장 박수현 대변인과 함께 해명 #‘낙태죄 논란’으로 주목받는 청가회 #청와대-종교계 긴장 땐 불교·천주교·기독교 신도회가 역할 #이명박 정부 때 4대강으로 갈등 있자 청불회·청가회 나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29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천주교 수원교구를 찾아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위원장 이용훈 주교(수원교구장)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29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천주교 수원교구를 찾아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위원장 이용훈 주교(수원교구장)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인용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낙태’ 관련 발언을 놓고 불거진 청와대와 천주교의 갈등이 해소될 수 있을까.

논란의 발언 당사자인 조국 수석이 29일 오후 경기 수원시 장안구 천주교 수원교구를 찾아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용훈 주교를 예방했다. 조 수석은 이 주교를 만나자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청와대 가톨릭 신자 모임 ‘청가회’의 회장을 맡고 있는 박수현 대변인도 함께였다.

이들이 이날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를 찾은 건 지난 26일 조국 수석이 ‘낙태죄 폐지’ 국민청원에 대답하면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임신중절에 대해 ‘우리는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바 있다”고 말한 데 대해 생명윤리위가 다음날 “사실을 호도하는 것”이라며 강력 반발했기 때문이다.

박 대변인은 면담 뒤 브리핑을 통해 “오늘(29일) 천주교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이용훈 위원장님과 이동익 신부님(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총무), 지영현 신부님(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사무국장)을 조국 민정수석과 함께 면담했다”며 “생명 존중이라는 천주교회의 입장을 겸허하게 청취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청와대의 청원 답변 내용 중 교황님의 말씀은 ‘아이리시 타임스’ 기사를 압축하는 과정에 실수가 있었음을 말씀드렸다”며 교황 발언을 잘못 인용한 데 대해서도 사과했다. 박 대변인은 “오늘 면담은 상호 유익한 대화였다”고도 덧붙였다.

‘아이리시 타임스’는 2013년 9월 20일자에 [Pope Francis has indicated he wants a “new balance” within the Catholic church, calling for greater involvement of women in the institution’s key decisions and a less condemnatory approach to gay people, divorcees and women who have had an abortion.]이라고 보도했다. 이 문장은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톨릭 교회 안에서 새로운 균형점을 찾길 원하며, 주요 의사결정에서 여성의 참여도를 높이고 동성애자, 이혼한 사람들, 낙태를 한 여성들에 대한 비난을 줄이는 방향으로 가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정도로 번역이 가능하다.

문제는 조 수석이 교황의 ‘새로운 균형점(new balance)’ 발언을 곧바로 낙태죄 폐지 문제와 연결지었다는 점이다. 천주교는 “낙태에 반대하는 교황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고 반발을 했고, 결국 조 수석이 사흘 만에 실수를 인정했다.

박 대변인은 이 자리에서 “청와대가 낙태죄 문제에 대해 어떤 결정을 하거나 예단을 갖고 이 문제를 바라보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고, 조 수석이 교황 발언을 인용한 것도 낙태를 죄(罪)로 보는 교황의 기본 인식을 왜곡하거나 호도하려 한 게 아니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전날 문재인 대통령은 관련 보고를 받은 뒤 “(천주교계가) 오해하지 않도록 잘 설명하라”고 지시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난 26일 청와대 홈페이지,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를 통해 '친절한 청와대'라는 이름으로 23만 명이 청원한 낙태죄 폐지 청원에 대해 답변을 하고 있다. [사진 유튜브 캡처]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난 26일 청와대 홈페이지,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를 통해 '친절한 청와대'라는 이름으로 23만 명이 청원한 낙태죄 폐지 청원에 대해 답변을 하고 있다. [사진 유튜브 캡처]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 [중앙포토]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 [중앙포토]

역대 청와대는 종교계와 가까우면서도 먼 관계를 유지하곤 했다. 특히, 거의 모든 종교의 핵심 교리와 맞닿아 있는 ‘생명(生命)’ 관련 이슈에선 이번 논란처럼 청와대와 종교계가 긴장 관계에 놓이곤 했다. 우리 헌법은 정교(政敎) 분리의 원칙을 내세우고 있지만 정부가 종교계와 불편한 관계를 갖게 되면 정책 추진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 것도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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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당시 4대강 사업 반대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생명의 존엄성 문제를 놓고 청와대와 천주교 주교회의가 갈등하는 양상을 보이자 또 다시 청와대 종교 모임이 주목을 받고 있다.

청가회는 지난 8월 16일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첫 공식 미사를 봉헌했다. 미사를 마친 뒤에는 박수현 대변인을 회장으로 선출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이지만 청와대 직원들이 불편할 수 있는 만큼 행사에는 참석하지 않았다고 한다.

수석비서관급 이상 고위직 중에 불교 신자가 없어서 한동안 회장 선출에 어려움을 겪던 청불회는 최근 하승창 사회혁신수석을 신임 회장으로 추대하기로 하고 다음 달 중순 조계사에서 취임법회를 열 예정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하 수석이 최근 청불회장을 맡기로 하고 불교 신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가장 결속력이 강하고 역사가 긴 청와대 기독신우회는 문재인 정부가 취임한 이후 6개월이 지났지만 회장이 계속 없는 상태이다. 기독신우회의 경우 수석급이 회장을 맡는 청불회·청가회와 달리 과거 청와대에서도 비서관급이 회장을 맡곤 했다. 회장이 없어도 모임이 활발하고, 국정기획자문위원장을 맡았던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처럼 기독교계와 소통할 여권 인사도 많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회장의 상징성이 덜 필요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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