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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첫 집단의사 "일파만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민주화」의 거센 물결은 마침내 경찰조직 내부에까지 넘쳐들였다.
28일 충주경찰서 수사계장 이병무경위(27·경찰대1기 졸업)와 서울시경기동대소속 연성흠일경(24·감신대3 휴학)의「양심선언」에 이은 29일 경찰대 졸업초급간부와 경찰대 재학생들의 국립경찰사상 처음인 집단 의사표시는 경찰조직의 특수성에 비추어 일파만파의 충격과 파문을 던지고있다.
이들 경찰내부에서 터져 나오고 있는 경찰 전면개혁쇄신주장의 초점은 경찰의「정치적 중립화」에 모아진다.
이 문제는 사실 경찰민주화의 핵일 뿐 아니라 권위주의 통치지배 구조 해체라는 대명제와 안팎의 관계를 이루는 성격이어서「민주화」논의의 주요과제임에 틀림없다.
그런데도 지난해 헌법개정작업에서조차 여야간 이 문제는 굉식거론 되지 않은 채 지금껏 본격 논의가 유보되어왔다.
이는 사안이 갖는 미묘한 정치적 성격과 중대성·복잡성에다 정파간·정부기구간 이해와 입장의 차이가 복합된 결과였다. 그러나 일련의 사태를 계기로 경찰 내부에서까지 잠복했던 요구가 공개분출 함으로써 문제의 논의를 미루기는 어렵게 됐다.
경찰내부는 물론 국민 모두의 바람도 더 이상 경찰이 권력의 도구로 국민을 억압하는 역할을 해서는 안 된다는데 모아지고 있는 이상 이제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 공개적이고 본격적인 논의를 통해 최선의 지혜와 여론을 수렴하고 제도개선을 실천해야만 한다는 지적이다.
경찰대 출신들의 경찰중립화촉구 성명은 경찰내에 심정적 동조가 확산되어 가면서 큰 여파를 던질 전망이다.
실제로 상당수 경찰관들은 ▲경찰의 정치적 중립이 선행되어야 진정한 민주화실현이 가능하며 ▲경찰의 중립는 정치적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고 ▲이는 전 국민이 함께 풀어나가야 할 과제라는 성명내용에 마음으로부터 박수를 보내고있다.
경찰 내에는 여전히 진압지상주의「맹목충성파」가 있기는 하지만 정치권력에 예속되지 않는 경찰 본연의 모습을 갈망하는「양심세력」이 다수다.
이들의 쇄신론이 표면에 나타난 것은 지난해 6월 사태 후 경찰대 재학생과 졸업생 사이에서부터 시작됐다. 특히 재학생들은 이번 겨울방학 직전에 경찰 체질개선·민주화를 주제로 한 토론회를 학교에서 가졌고 강민창전본부장 구속후인 지난25일 개학이 되자 모종의 집단행동을 위해 움직인 것으로 전해진다.
현역에 배치된 경찰대 졸업생들은 젊은 경찰관으로서의 이상과 암담한 현실사이에서 고민해왔고, 후배인재학생들이 격한 행동에 빠지지 않도록 보다 합리적인 방안으로 성명발표를 택했다는 후문이다.
이들의 행동은 강전본부장 구속 후 한동안 쇄신 움직임을 보이다 다시 패배주의에 빠진 경찰의 일부 중간간부들에게 자극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경찰수뇌부는 이 성명서사건에 대해『지휘계통을 밟지 않고 막바로 외부에 의사표시를 했고, 공무원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집단행동을 했다』며 유감을 표시하고 적절한 조치를 강구할 수 있다고 밝혀 귀추가 주목된다.
일부 간부들은 또 새 정부 출범직후 구성될 행정개혁위원회에서 어차피 경찰 발전문제가 거론될 전망인데 너무 조급히 행동한 것이 아니냐는 눈총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이 성명서를 계기로 수뇌부의 의식전환, 권위주의 청산, 부조리·인권유린행위 척결, 자질향상 등 경찰 스스로의 쇄신노력이 시작되어야 하고 정치권에서는 경찰민주화를 위한 제도혁신작업에 박차가 가해져야할 것임은 틀림없다.
경찰민주화를 위한 제도개선에는 ▲외정으로의 독립이나 공안위원회제도 도임에 의한 경찰중립화 ▲인사제도 쇄신 ▲권력집중방지를 위한 지방자치 경찰화 ▲처우개선 ▲6만여명에 이르는 전경·의경의 감축 등이 거론되어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김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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